율무 태음인의 부종과 습을 다스림으로써 관절염에 사용되고 습이 울체되어 나타나는 피부병에도 창이자와 함께 사용하면 유효하다

율무(Coix lacryma-jobi L. var. mayuen)

아침에 일어나서 손을 만지면 손이 부어서 굽어지지 않고 얼굴도 푸석하고 심하면 관절도 붓는 데는  율무를 사용한다. 이러한 부종은  심장의 순환능력이 약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고  류마티스로 인한 경우도 있다.  또한  관절에  활액이 부족하여 무거운 체중을 지닌 사람이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부종이 생기는데 이러한 경우에  율무를 사용하면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면서 부종이 가라앉는다.  다만  소음 소양인의 부종이 아닌  태음인의 부종에 사용해야 한다

율무는 동양에서는  습을 이기는 약으로 사용되었다. 오랜 고전인 황제내경에는  濕傷肉 風勝濕이라는 말이 있다. 습기는 몸을 상하게 하는데 바람은 습기를 이겨낸다. 바람이 불면 습기가 마른다.  이러한 성질을 이야기한다.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는 황제내경에서 자연계의 기운을 분별하는 기준이었다. 바람과 추위 더위 습기 건조함 화기 등으로 천기 즉 기후의 변화의 특징을 설명하였고,  인체 내에도  이러한 기운의 감염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육경음양을 설명하였다.  이는 양과 음을  재분류하여서  삼음 삼양의  태양 소양 양명과  태음 소음 궐음으로 성질을 분류하고 이러한  6 단계의   음양의 분화가  인체 내의 경락의 성질과 장기의 성질과 연관된다고 보았다.

이를 좀 쉽게 설명해보자. 하나의  식물을 보면  햇볕 물 기후온도의 변화에 따라 식물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햇볕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이 있는 반면에  인삼처럼  그늘을 좋아하는 음지식물이 있고, 건조한 땅을 좋아하는 땅콩과 같은 식물이 있는 반면에 습지에서 사는 연꽃과 같은 식물이 있다. 열에 강한 선인장과 같은 식물이 있는 반면에  추위에 강한 영하  30도가 되어야 꽃이 핀다는 설련화 같은 식물이 있다.

Saussurea gossypip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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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ssurea Gossypiphora  국화과 취나물 속으로  국내에  saussurea 속에는 사창분취 서덜취 각시취 북분취 등  다종의 식물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태양체의 식물로서  태음인약으로 사용될 수있다.

음과 양은  사실적인 언어이다. 사물을  파악하는 기준으로  사용한 것이다  음과 양이 내포하는 관념이 아닌  실체를 이용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율무는 이런 면에서 습기를 이기는 바람처럼 더운 성질이다. 물이 겨울에는 얼어 있다.  봄에 따스함을 만나면 열이 가해지면서 얼은 물이 녹아서 흐르고  더욱 뜨거우면 증산되어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비를 뿌린다. 율무의 성질은 차가워서 고정돼 있는  얼음과 같은 인체의  물성분으로 구성된 여러가지 습(한방용어)을 바람과 같은 기운으로 증화시켜서  물이  움직이게 하고  소변으로 배출되게 하는 성질이 있다.

사상학에서는 태음인이 이러한 습이 많은 체질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체내에 차가움으로 인한 습의 정체가  부종을 일으켜서 관절염이나  각기병  심장성부종인  얼굴이 붓고 손발이 붓는 병들에  율무를 사용하여서 부종을  내리게 하였다.

전설상의 황제인 삼황오제가 중국역사에서 등장하는데  이후에 하나라의 우(禹)임금은 치수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인 곤(鯀)이 황화의 범람을 제방으로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우임금은 물길을 터서 운하를 만들어서  물과 싸우지 않고  흐르게 하여 황화의 범람을 막고 논밭에  물을 대는 데 성공하였는데우임금의 어머니가 율무를 먹고 우를 나았다는 설이 있다. 청초의 왕부지는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율무가 출산에 도움이 됐으리라고 추론하였다. 이는 율무가  임신에 도움이 되었는지 자궁수축을 도와 출산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태음인의 임신출산에 도움이 되었다는 오랜 이야기이다.

薏苡仁. 漢陽王夫之撰 한  詩經稗疏卷四 에는 或有謂禹母 吞薏苡而生禹者則 以薏苡能催生産 (율무는 능히 출산을 돕는다) 今方家猶用之 禹母或時産難因食之而生耳

의학서에서 율무가 습을 이긴다는 설은 장중경(AD 150-219) 선생의  금궤요략에서 비롯된다. 풍습으로 인한 병은 온몸이 쑤시고 아프며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마황 행인 율무 등을 사용하는 처방으로 풍습을 제거하였다. 하지만 이미 중경보다  100년이나 앞서 있었던 후한 광무제 때 장군인 마원은 남방에서 율무를 먹으면서 풍토병을 이겨 내었던 기록이 있다. 베트남 평정으로 유명한  마원장군의 사적이 기록된 후한서에는 마원과 율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원은 베트남을 평정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교지의이(교지는 베트남을 말한다)의 종자가 굵어서 이를  한 수레 실어서 돌아왔는데, 그 사후에  간신들이 그를 참소하여서 마원이 베트남에서 明珠를 한 수레 실어왔다고 하였다.  이는  명주 보물이 아닌 율무종자였던 것이다.  마원은 베트남에서 瘴氣(다습한지역에서 일어나는 풍토병)을  이기는 방법으로  율무를 항상 군대에 먹게 했다는 설이 전한다.

初援在交阯常餌薏苡實用能輕身省慾以勝瘴氣   神農本草經曰薏苡味甘微寒主風濕痺下氣除筋骨邪氣久服輕身益氣  南方薏苡實大 援欲以為種 軍還載之一車 時人以為 南土珍怪權貴皆望之 援時方有寵故莫以聞 及卒後有上書 譖之者以為前所載還 皆明珠文犀犀之有文彩也

율무는 습을 이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암증에도 사용되고 각기 부종 관절염에  수분이 응체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여성의자궁병에도 응용된다. 인체를 집으로 비유해 보면 집에 난방을 때도 보일러에 물이 돌지 않으면 방이 더워지지 않는다.  만약 난방의 불이 약하고 순환 펌프가 밀어주는 힘이 약하면  보일러의 물이 돌지 않고  방은 냉구들이 된다. 내경에서는 폐의 역할을 순환펌프의 역할로 보았다.  폐의 양기가 작용하면 위기라는 인체의 표층을 주관하는 양기가 돌면서 혈맥을 전신순환시킨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폐양은  인체 내의 응결된 수기를 풀어서 흐르게 함으로써  부종을 없애고  관절부종뿐만 아니라  심장의 수축력이 약화되어서 나타나는 안면 수족부종이나  암환자가 림프액이 잘 흐르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흉수 복수 등으로 인한 부종에도 응용될 수 있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심근 수축력이 약화되어서 울혈성 심부전이 생기는 것으로  특히 폐순환이 약한 태음인은 쉽게 면목부종이 생기는데 이러한 경우에 율무가 좋으며 수박을 껍질채 같이 다려먹으면 쉽게 부종이 빠진다.

내게 온 환자분 중에  태음인으로 출산 후에 미역국을 먹고 몸이 붓기 시작하였는데  일반적으로 태음인은  미역국보다는 다시마국을 권한다.  임신부종에는 민간에서 붉은 호박을 다려먹으라고 하는 설이 있는데 이 분도 호박을 다려먹고  오히려 부종이 더욱 심해져서  응급으로 대학병원을 가게 되었다. 호박은 태양인 약이다. 붉은 호박은 태양인이 소고기를 먹고 부었을 때 배추와 함께 다려먹으면 쉽게 소변이 나오면서 두드러기와 소고기독이 다 빠진다. 하지만  태음인에게는 오히려 위완의 기운을 약화시켜서 부종을 더하게 한다 (동무공의 논법으로는 온음이 하강하지 못하는 원리이다.  태음인병증 중에  위완수완표한병이 있는데  이는  위완국의 온음이 하강하여 소장을 덥혀야 하는데  청양은 쉽게 복부를 타고  상승하지만 온음은 내리지 못하는  태음인에게서 위완국의 표기가 냉해지면서 전신위기의 순환이 약화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병원에서는 심장이 부어서 정밀검사를 하여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밤새 급한 연락이 와서 수박을 껍질채 다려먹으라고 하였더니 하루밤 사이에  소변이 나오면서  체중이 4-5kg  가 족히 줄어서 바로 퇴원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한의학은 화학약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자연이 가지는 독성에 대한 완화시키고 완충시키는 원리가  있다.  잘 적용하여 사용할  수만 있으면 자연의 조합이 더 좋을 때도 많다. 또한 부종을 없애는데  태음인은 율무와  이스라지를  죽을 끓여서 먹으면  노인성 부종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도 있다.  이스라지는 욱이인으로 태음인약이다. 또한  율무가  민간에서는 양기를 없애는 약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아울러 율무를 먹으면  남자의 양기가 약화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바로 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마원이 항상 이를 먹고 몸이 가벼워지고 욕정을 누를 수 있고 남방의 풍토병을 이길 수 있었다는 데서 전하지만  근거가 없다고 본다.

isragi

율무는 또한  한대부터 이미 악성종양에 사용하였다. 중경선생의  금궤요략에서는  율무가  암증에 사용된 기록들이 있다. 腸癰之為病其身甲錯腹皮急按之濡如腫狀腹無積聚身無熱脉數此為腹内有癰薏苡附子敗醬㪚主之(瘡癰腸癰浸淫病脉證并治 金匱要畧論註卷十八 漢張機撰)  장옹이라는 병은 몸이 피부가 각질이 일어나면서 뱃가죽이 당기는데  누르면 힘이 없이 들어가고 마치 부은 듯하지만 안으로 적취가 없다. 몸에선 열이 없으나 맥박은 빠른 것은 배속에 옹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니 의이부자 패장산을 사용한다(여기서 장옹은 복막염으로 해석이 가능하나,  넓은 의미에서 종양에 의한 증상을 말한다).  율무는 위경탕에서도  폐옹에 사용됨과 동시에 장옹에도 사용되었으니 당시 항암효과를 보았다 할 수 있다.  당대의 손사막은 천금방으로 유명한데  당이전의 여러 문헌을 참조하고  개인의 각고 노력으로 여러가지 처방을 설립하는데 특히 종양,  오늘날의 암분야에서도 개척자이다. 손사막 또한 율무를 폐옹이나 장옹에 사용하였는데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폐암이나 대장 난소암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율무가  암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율무의 기원

율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한대에 마원이 베트남 쪽에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우임금의 어머니가 율무를 먹고 나았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명말청초의 학자인 왕부지의 설이다.  하지만 황제내경에서는 율무 즉 의이자라는 말이 등장한다. 율무의 다른 이름은 회회주이다. 규합총서에 (순조 9년인 1809년에 빙허각 이씨가 지은 가정 내의 상식에 대한 책으로 당시까지의 간단한 약이나 음식 등에 관한 지식과  여러가지 상식을 수록하여 일종의 가정보감이라고 할 수 있다)  “율무는    마른  땅에 심고 쇠똥 거름을 하라 그 뿌리가 살충한다. 교지 율무는 굵기가 진주 같으니 마원이 이것을 좋아하여 습을 없이 하기 위해 한 수레를 싫어왔는데 명주 한 수레를 실어왔다는 소문이 났다.  일명 회회주이다.  풀을 쓰면 큰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고로 선창을 바른다” 라고 하였다.

황제내경설)  율무의 기원은 이미 황제내경에 나온다. 내경의  玊機眞藏論篇 에 진심맥은  매우 굳은 것이 쳐오르는 것이 마치 율무알을 끊임없이 굴리는 것 같다. 안색이 붉고 검으며 윤택하지 못하고  털이 툭툭 끊어지면 죽는다 (喜怒令不得以其次故令人有大病矣 因而喜大虚則腎氣乗矣 怒則肝氣乗矣 悲則肺氣乗矣 恐則脾氣乗矣 憂則心氣乗矣 此其道也  – – – –堅而搏如循薏苡子 累累然 色赤黒不澤 毛折乃死 -黄帝内經素問卷六- 玊機眞藏論篇第十九)  하여  이미 내경시대인 진한시대 이전에  있었다고 본다.

하왕조에 등장한다는 설)  우임금은 중국의 고대 황제로서 하나라의 임금이다. 치수를 하여서 유명하였다. 요임금이 황하가 범람하자 곤(鯀)에게  명하여서 치수를 시켰는데 제방을 막기만 하고 물길을 트지못해 실패하자 곤을 죽이고  그의 아들인 禹로 하여금 치수를 하게 하였다. 우는 물길을 터서 갈라줌으로써  범람을 막고 농사에 이용하게 하였는데  13년 동안  3 번이나 자기집 앞을 지나갔지만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명말청초의 대학자인 왕부지(1619-1692)의 시경비소에는 우의 어머니가  율무를 먹고 우를 나았다고 하니 율무는 출산에 도움이 되어서 오늘날 의사들이 이를 사용하는데 우모는 난산에 율무을 먹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후한마원 때 수입되었다는 설)  후한의  마원[i]은 유명한 장군이다. 대장부위지 궁당익견 노당익장이란  말로 유명하다. 마원은 교지(오늘날의 베트남) 의 반란을 토벌하고 평정하였다. 마원은 이곳에도 돌아올 때 한 차의 율무종자를 수레에 실어왔다. 後漢書卷五十四 의 마원열전馬援列傳第十四 에 의하면 마원은 원래  군독우로서 죄인을 사명부에 이송하는 도중에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풀어주고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사면받고 그곳에서 농사와 목축을 하였는데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 수백가구가 모여살았다고 한다.

後為郡督郵送囚至司命府 囚有重罪援哀而縱之遂亡命北地遇赦因留牧畜賓客多歸附者遂役屬數百家

 마원은 항상 말하길  장부가 뜻을 가지면 어려울수록 더욱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더욱 장건해야 한다고  말을 하였다. 들에 처하면서 소와 말과 양을 수천마리를 키우고  곡식은 수만곡(斛- 열말十斗 ) 이나 거두는데 또 탄식하길 무릇 재물이 늘어나는 것은 이를 잘 베풀고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돈을 지키는 노예가 될 뿐이라 하고 자신의 재산을 형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이전처럼 몸은 양가죽옷과 바지를 입고 살았다.  후에 왕망에게 천거되어서 북파장군으로  베트남을 평정하게 된다.

丈夫為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因處田牧至有牛馬羊數千頭 穀數萬斛 既而歎曰 凡殖貨財產貴其能施賑也 否則守錢虜耳  乃盡散以班昆弟 故舊身衣羊裘皮絝(양구피고)  王莽末 四方兵起 莽從弟衞將軍林廣招雄俊乃辟援 及同縣原渉為掾

마원(bC 14-AD49) 은 베트남에 있던 시절에 항상 율무열매를 먹었는데 이를 먹고 몸이 가볍고 욕정을 누를 수가 있고 남방의 습독을 이길수가 있었다.  신농본초경에서 말하길  율무는  맛은 달고 약간 차가운 성질이 있고 풍습비(관절동통 무릅통증 중풍)를  치료하여 기운을 순행시키며  근골에 머무는 사기를 제거하고 오래 먹으면 몸이 가볍고 기운을 더한다고 하였다. 마원은  남방의 율무알이 커서 이를 종자로 가져오기를 원하여 군대가 돌아올 때 한 수레를 실어서 왔는데 세상사람들은 남방에 남 진귀한 것을 실어왔다고 하여서 권문세가들이 모두들 부러워하였다. 당시에는  마원이 총애를 받아서 이를 소문내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후에 참소하여서 그가 이전에 실어왔던 것은 모두 명주와 문서라고 (코뿔소의 뿔 중에 귀한 문양 있는 뿔) 하였는데 실은 율무종자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율무는 회회주라는 이명이 있다.  初援在交阯常餌薏苡實用能輕身省慾以勝瘴氣

農桑輯要[ii]卷六 는 원대의 농서로 중국 최초의 관찬농서이다. 元司農司撰 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창사문 등이 1273 년 집성하여 1286 년 간행하였다.  薏苡新添九月霜後收子  至来年三月中隨耕地於壠内㸃種 勞盖令平有草則鋤  율무는 9월 서리 내린 후에 종자를 거두고  다음해 3월에 밭을 갈고 이랑에 심고 평평하게 다듬으로 김을 메준다.

역대 율무의 처방에 관한 기록참조

신농본초경에서는 율무는 맛이 달고 약간 차가운 성질로서 풍습과 마비를 다스리고 근골의 사기를 치료한다 하였다. 神農本草經曰薏苡味甘微寒主風濕痺下氣除筋骨邪氣久服輕身益氣南方薏苡實大 援欲以為種 軍還載之一車 時人以為 南土珍怪權貴皆望之 援時方有寵故莫以聞 及卒後有上書 譖之者以為前所載還 皆明珠文犀犀之有文彩也

율무가 습을 치료하는 이야기는  장중경 선생의 금궤요략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金匱要畧論註卷二 의 痓濕暍 조목에서는 습가의 병이 발생하면 몸이 쑤시고 열이 나면서 얼굴이 노랗게 되고 기침이 나면서  머리가 아프고 코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맥상은 크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있고 속이 편하면 큰 병이 아니고 병이 머리에 한습이 머무는 것이니 코가 막히는 것이다. 약을 코 속에 넣으면 나아진다. 습병이 나서 몸이 쑤시면 마황가출탕을 사용하여서 땀을 내게 한다. 절대 화법으로 공격하면 안된다. 환자가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면서 날 저물 때 더욱 열이 심해지면 풍습의 병을 얻은 것으로  땀을 많이 흘린 데다가  바람을 맞거나 오래도록 아프면서 몸을 춥게 해서 일어난 소치이니  마황 행인 율무 감초탕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濕家病身疼發熱面黄而喘頭痛鼻塞而煩 脈大自能飲食腹中和無病病在頭中寒濕故鼻塞納藥鼻中則愈濕家身煩疼可與麻黃加术湯發其汗為宜慎不可以火攻之  病者一身盡疼發熱日晡所劇者此名風濕之病傷于汗出當風或久傷取冷所致也可與麻黄杏仁薏苡甘草湯     麻黄 杏仁 薏苡 甘草湯方 杏仁十箇去皮尖 薏苡五錢 甘草一兩炙  右剉毎服四錢匕水盞半煎八分去滓温服有微汗避風

진의 갈홍은  율무를 제호(우유를 발효시킨 것과 같은 식품)  醍醐 와 창이자 등과 함께 풍습비에 사용한 기록이 있다.食醫心鏡除一切風濕痺四肢拘攣 蒼耳子三兩搗末以水一升半煎取七合去滓呷之 又治筋脈拘攣久風濕痺下氣除骨中邪氣利腸胃消水腫久服輕身益氣力  薏苡仁一升搗為散每服以水二升煮兩匙末作粥空腹食又主補虚去風濕痺醍醐二大兩煖酒一杯和醍醐一匙飲之 (肘後備急方卷三 晉葛洪撰) 모든 풍습비통의 사지가 오그라들고 경련이 일어나는 병에  창이자를 사용하였고, 근맥이 당기고 경련이 일어나고 오랜 중풍과 관절염에 기운을 내리고 뼈속의 사기를 제하고 장위를 이롭게 하면서 수종을 없앤다. 율무 한 되를 가루로 만들어서 물 2되에 달여서 두 숟갈 정도의 죽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진의 갈홍은 주후비급방에서 율무를 협심증의 증상에 사용하였다. 율무는 오늘날 협심증의 증상에도 사용되었다. 治卒心腹煩滿又胸脇痛欲死方以熱湯令灼灼爾漬手足復易秘方  又方青布方寸鹿角三分亂髮灰一錢匕以水二升煑令得一升五合去滓盡服之  又方剉薏苡根濃煑取汁服三升   治厥逆煩滿常欲嘔方小草鞋細辛乾薑椒各二兩附子二兩炮搗蜜和丸服如桐子大四丸 (肘後備急方巻一 晉葛洪撰 救卒中惡死方第一)

갑자기 가슴과 배가 답답하고 그득하면서 가슴가 옆구리가 통증이 오면서 죽을 것 같을 때 뜨거운 물에 손과 발을 담근다.  또한 깨끗한 포 한치에다 녹각 3분 난발회 한돈을 물 2되에다 달여서 한되 반홉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또한 율무뿌리를 짙게 달여 3되를 먹는다. 이와 더불어서 소음인의  구역감과 가슴이 그득하고 답답하며 항상 구역질이 나는 증세에  소초혜(짚신) 와 세신 건장 부자 천초 등을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손사막은 당대의 명의로 중국의학사상의  최초로 당 이전의 의학업적을 모아서 처방과 증상을 연구하였고 특히 암을 치료한 부분에 있어서 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천금식치[iii]에는  율무에 대한 기술을 하고 있다.

당의 손사막은 울무를 근육이 오그라들어서 굴신이 힘든 풍습비에 사용하였다. 또한 수기로 얼굴이 붓고 천식발작을 하면서 꼼짝 못하고 온몸이 통증이 오는 데  율무를 사용하였다.

薏苡仁味甘温無毒主筋拘攣不可屈伸久風濕痺下氣久服輕身益力其生根下三蟲名醫云薏苡仁除筋骨中邪氣不仁利腸胃消水腫令人能食一名一名感米蜀人多種食之(備急千金要方卷八十 唐孫思邈撰 食治 榖米第四) 율무는 맛이 달고 성질은 다스하면서 독이 없다. 근이 당기고 경련이 일어나고 다리를 펴고 구부리고 하지 못하는 증상과 오래 된 풍습비통을 다스리는데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력이 강해진다.

송의 진직은 수친양노서에서 율무와 의이인 상백피 등이 노인들의  면목부종에 사용하였다. 食治(천금식치-서명) 老人 水氣面腫腹脹 喘乏不安 轉動不得 手足不仁 身體重困 或疼痛 郁李仁粥方 郁李仁二兩研以水濾取汁 薏苡仁五合淘 右以煎汁作粥空心食之日二服常立效   食治老人水氣面目手足浮腫腹脹風急桑白皮飲  桑白皮四兩切 青粱米四合研 右以桑汁煮作飲空心漸食常服尤佳益( 壽親養老新書卷一宋陳直撰)

노인이 수기로 인하여서 얼굴이 붓고 배도 부어오르고 호흡을 헐떡거리며 어쩌지 못하며 몸을 뒤집지 못하고 수족이 불인하고 몸이 무겁고 쑤시는데 욱이인죽을 사용하는데 욱이인과 율무를 사용하여서 마시면 효과가 있다. 상백피도 역시 효과가 있다. 성제총록에서 의이인과 위유 서각 오매 맥문동 등을 구사하여서 중풍을 치료한 기록이 있다. 성제총록에서는 의이인탕을  설정하였다. 薏苡仁湯方  治中風肢體緩縱精神恍惚言語蹇澀  薏苡仁炒五兩 萎蕤切焙 茯神去木各三兩 犀角鎊二兩 烏梅七枚去核 麥門冬去心焙三合  右六味麄篩毎服五錢匕水一盞半入生薑半分切煎至八分去滓入竹瀝白蜜各少許再煎三五沸食後日午夜臥各一服(聖濟總録纂要卷一 休寜程林纂 諸風門)  중풍으로 사지가 늘어지고 정신이 황홀하고 말이 더듬한 데 율무 위유 복신 서각 오매 등을 사용하였다.

송의 당신미의 증류본초에서 진장기를 인용하여 수기가 독을 발휘하여 부종이 생기는데 마원의 고사를 인용하였다. 水氣有毒 能為風温疼痺 水腫面黄 腹大 初在皮膚脚手漸至六府 令人大小便澁 至五藏漸漸加至忽攻心便死急不旋踵 無寛延嵗月既是隂病復宜 以隂物生類諸猪魚螺鱉之屬 春夏秋冝瀉 冬冝補藥 尤宜浸酒中服之隨隂陽所行者 昔馬援南征多載薏苡仁 閔叙留寓常食猪肝 葢以為濕疾也 江湖間露氣成瘴 兩山夾水中氣瘧一冷一熱相激 成病 癥此三疾 俱是濕為能與人作寒熱 消鑠骨肉 南土尤甚若欲醫療 須細分析其大略皆瘴類也人多一槩醫之則不差也(證類本草卷五宋唐慎微撰)

 

[i] 자 문연(文淵). 산시성[陝西省] 싱핑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유푸펑[右扶風] 마오링[茂陵] 출생. 전한(前漢) 이래 명문(名門) 출신으로, 처음에는 북방으로 피하여 목축에 종사하였고, 그 후 빈객(賓客) 수백가(數百家)를 포섭하여 세력을 얻었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고, 이어서 외효(隗浴) 밑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광무제(光武帝)의 신하로서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이어서 농서태수(陇西太守)가 되어 간쑤성[甘肅省] 방면의 강(羌) ·저(免) 등의 외민족을 토벌하였다. 41년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趾: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하였다. 그 공로로 43년 신식후(新息侯)가 되었다. 45년 이후는 북방의 흉노(匈奴)와 오환(烏丸)의 토벌에 활약하였다. 이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하였으나,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苦戰)하다가 진 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ii] 중국 최초의 관찬(官撰) 농서로, 나라 조정에서 농업진흥을 위하여 설치한 사농사(司農司)의 창사문(暢師文) 등이 1273년에 집성하여, 1286년에 간행 ·공포하였다. 내용은 경간(耕墾) ·파종(播種) ·재상(栽桑) ·과실 ·약초 등 10문(門)으로 되어 있으며, 《제민요술(齊民要術)》을 비롯한 각종의 문헌을 조리있게 인용하고 있다. 특히 당시의 새로운 유용작물(有用作物)인 목화의 재배를 장려한 기사가 주목된다.

[iii] 序昔神農遍嘗百藥,以辨五苦六辛之味,逮伊芳尹而湯液之劑備。黃帝欲創九針,以治三陰三陽之疾,得岐伯而砭艾之法精。雖大聖人有意於拯民之瘼,必待賢明博通之臣,或為之先,或為之後,然後聖人之所為,得行於永久也。醫家之務,經是二聖二賢而能事畢矣。後之留意於方術者,苟知藥而不知灸,未足以盡治療之體:知灸而不知針,未足以極表裡之變,如能兼是聖賢之 者,其名醫之良乎!有唐真人孫思邈者,乃其人也。以上智之材,抱康時之志,當太宗治平之際,思所以佐後庇民之事,以謂上醫之道,真聖人之政而王官之一守也。而乃祖述農、黃之旨,發明岐、摯之學,經掇扁鵲之《難》,方采倉公之《禁》,前仲景《黃素》,元化《綠 》,葛仙翁之《必效》,胡居士之《經驗》,張苗之《藥對》,叔和之《脈法》,皇甫謐之《三部》,陶隱居之《百一》。自余郭玉、范汪、僧坦、阮炳,上極文字之初,下訖有隋之世,或經或方,無不采摭。集諸家之所秘要,去眾說之所未至。成書一部,總三十卷,目錄一通。臟腑之論,針艾之法,脈證之辨,食治之宜。始婦人而次嬰孺;先香港腳而後中風、傷寒、癰疽、消渴、水腫;七竅之、五石之毒、備急之方、養性之術,總篇二百三十二門,合方論五千三百首,莫不十全可驗,四種兼包。濃德過於千金,遺法傳於百代。使二聖二賢之美,不墜於地,而世之人得以階近而至遠,上識於三皇之奧者,孫真人善述之功也。然以俗尚險怪,我道純正,不述剖腹易心之異;世務徑省,我書浩博,不可道聽塗說而知,是以學寡其人,寢以紛靡;賢不繼世,簡編斷缺;不知者以異端見黜,好之者以闕疑輟功。恭惟我朝以好生為德,以廣愛為仁,乃詔儒臣,正是墜學。臣等術謝多通,職專典校,於是請內府之秘書,探《道藏》之別錄,公私眾本,搜訪幾遍,得以正其訛謬,補其遺佚。文之重復者削之,事之不倫者緝之,編次類聚, 月功至。綱領雖有所立,文義猶或疑阻。是用端本以正末,如:《素問》、《九墟》、《靈樞》、《甲乙》、《太素》、《巢源》、諸家《本草》、前古脈書、《金匱玉函》、《肘後備急》、謝士秦《刪繁方》、劉涓子《鬼遺論》之類,事關所出,無不研核。尚有所闕,而又溯流以討源,如:《五鑒經》、《千金翼》、《崔氏纂要》、《延年秘錄》,《正元廣利》、《外台秘要》、《兵部手集》、夢得《傳信》之類。凡所派別,無不考理,互相質正,反覆稽參;然後遺文疑義,煥然悉明。書雖是舊,用之惟新,可以濟函靈,裨乃聖好生之治;可以傳不朽,副主上廣愛之心;非徒為太平之文致,可佐皇極之錫福。校讎既成,繕寫伊芳始,恭以上進,庶備親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