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향기 수목원 관람기 2016-1120

일요일 아침 정 선생과 함께  박 선생님을 모시고  물향기 수목원을 찾았다. 새로 나온 도로가 바로 물향기 수목원으로  안내하는데 안양에서 불과 30분밖에 안 걸린다.  10시경에 도착하니 날씨는 11월 날씨치고는 전혀 쌀쌀한 기색이 없고  드문 드문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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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서 늘어져 보이는 화백나무가 보이는데, 동작이 빠른 정 이사가 나뭇잎을 따 온다.  뒤를 살펴보라고  박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데 뒤에 숨구멍이 하얀색으로 x 자이다. 화백은 혹 X 자 혹은 나비 모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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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이미 낙엽이 져서 그득하고  오른편으로  자작나무과의 개서어나무의 튼튼한 줄거리와 열매들이 보인다. carpinus tschonoskii Maxim  암수 한 그루로 10월달 양양 양수발전소에서도  보았는데  당시 개서어나무는 줄기의 피문이 아주 독특하였던 것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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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피나무 열매가 날개를 달고 떨어지지 않고 보인다. 아욱목의 피나무과에 속하는 찰피나무는 Tilia mandshurica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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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피나무(Tilia  mandshurica  Rupr -糠椴)는 위의 사진으로  조금 옆의 결각이 사나운데, 피나무 (Tilia  amurensis -紫椴)는  반면에 결각이 부드럽다. 이들은 나무질이 가볍고 무늬가 비교적 곧은 편이다. 또한 나무질이  부드럽다. 일전에 맛을 보았을 때  태양인에게 적합한 나무로 기억되는데  다시금 실험이 필요하다. 이들은 염주목으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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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가죽나무는 흔하지만  참죽나무가 드물다고 하셨는데 컴컴한 숲 속으로 들어가시더니  기억하고 계신 참죽나무를 찾아 보여주시는데 가지만 앙상하고  높은 가지 끝에  열매가 잘 알아보기 힘들게 달려있다.  참죽나무의 특징은 수피가 터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가죽나무와 다르다고 하신다. – 가죽은 질겨서 안터지네 하면서 외워본다.%ec%b0%b8%ec%a3%bd%eb%82%98%eb%ac%b4-1120-2016-%eb%ac%bc%ed%96%a5%ea%b8%b0%ec%88%98%eb%aa%a9%ec%9b%90-004

 

참죽나무( Cedrela sinensis) 춘근백피 목재결이 아름다워서 이로 만든 도마가 많이 사랑을 받는다. 한방에서는  저근백피와 혼용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가죽나무와는 잎새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수피가 터

%ec%b0%b8%ec%a3%bd%eb%82%98%eb%ac%b4지는  차이가 있고 어린 순은 찹쌀풀을 씌워서 튀각으로 해서 주로 절에서 많이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잎에서 기수 우상복엽인지 우수 우상복엽인지가 역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참죽나무는 우수 우상복엽이며 가죽나무는 기수 우상복엽이다.

소엽은 10-20개이고 엽연은 거치연 또는 전연으로  표면은 털이 없지만 배면(아래 면)에는 맥 위에 약간의 털이 있거나 한다. 원추화서로 피면서 양성화이고  백색이다. 꽃잎과 꽃받침은 각기 5개씩이다. 종자는 양쪽에 날개가 있다.

  • 又方治小兒疳痢不止肌體黄瘦宜服取椿白皮一握倉粳米五十粒葱白一握甘草三寸炙䜴四合以水一升煮取半升頻服之小兒以意服之一方椿白皮為末麫作丸日亁水煮服加鹽醋亦可一方臭樗根白皮塗蜜炙焦羅為散毎服粥飲調下半錢一方樗椿白皮葉與皮切用皆
  • 同療小兒疳痢困垂死方用益母草一握煮汁飲之取足瘥止甚妙 (普濟方卷三百九十八明周王朱橚撰嬰兒下痢門)

명의 태조인 주홍무는 일찍이 빈농 출신으로 안휘성에서 태어났다. 초기에는 이름을 주중팔(朱重八)이라고 하다가 후에 주원장(朱元璋)으로 개명하여서 홍건군에 참여했다. 원말에는 기근과 전염병이 매우 심하였는데  부친과 여러 형제들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부친 장사도 바로 못 지낼 정도였다. 1351년 백련교도들이 홍건적의 난을 일으키자 그도 또한 이에 가담하였다.  당시 중국의 중북부는 기근과 가뭄으로  700 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 이러한 연유로 민중봉기가 여러 군데에서 일어났다. 그런 배경에서 주원장은 황각사에 출가하여서 탁발승으로 돌아다니다가  홍건적의 대장인 곽자흥 밑에 들어갔다가 그의 양녀인 효자 고황후 마씨와 결혼하여서 신임을 받게 되고 세력을 얻어서곽자흥 사후에  남경에서 명을 창건한다. 그에게는 모두 2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5째가 효자 고황후 소생의  주정왕(周定王) 주숙(朱橚 1361- 1425년)이다. 주정왕은  패권 다툼에서 참소를 당하여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데 1378년 개봉주 왕에  봉해지고 이후에 참소를 당하여서 운남으로 귀향을 가게 된다. 그는 사람됨이 학문을 좋아하여서 영지에 여러 식물들을 심고 관찰하였고, 이의 응용을 연구하여서  400 여종의 식물을 화공을 시켜서 그리게 하고 이를 먹는 방법을 수록하여서 구황본초를 짓는다.  또한  주숙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방제학 서적인  보제방을 편찬하는 데 주관한다. 역사적으로  학문이 깊은 사람들은  다 신고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선생도 모두 귀향살이 하면서 그 울분을 학문에 쏟았다. 주숙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패권에서 물러나  학문에 몰두하여서  그 당시까지의 전해 내려온 처방을 정리하여 보제방을 쓰게 된다.  보제방에 의하면  소아감리병에  얼굴이 누렇게 뜨고 마르는데 춘근백피를 사용하는데  여러가지 용법이 있다. 가루로 내어서 환으로 빚어서 먹거나 죽을 쑤어서 먹으라고 하였는데 태음인 약인 익모초와 함께 소아 감리에 사용된다고 한다. 여기서 감병은 배가 부르고 영양실조가 되는 병이고  설사가 그치지 않는 병인데  태음인은 소장의 중초가 차거워서  잦은 설사를 하면서 장운동이 되지 않아서  마르는 병이 있다. 태음인 중에 마른 사람은 대부분 장운동이 느려지고 차가운 음식에 예민하면서 설사를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  익모초와 저근백피  찹쌀 등이 매우 유효하다.  또한 오랜 설사가 그치지 않는 데는 토끼 고기가 명약인데  일찍이 당대의 손사막은 토두골을 사용하여서 이를 치료하였다 (疳濕久下痢赤白百療不瘥者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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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는 어두컴컴한데, 푸릇푸릇 보이는  까만 열매를 달고 있는 맥문동들이 군데 군데  11월의 추위에도 시들지 않고 있다. 역시 태양체인 식물이라  추위에 잘 견디는가 한다. 맥문동은 백합과 식물로 태양체들의 특성인  목이 길게 보이는 모습이다.

천마도  꽃대가 위로 솟아올라서 제일 끝부터 꽃이 피는데  이 맥문동도 역시  꽃대가 한 줄기 위로 솟아올라서 다닥다닥 꽃대를 둘러서 핀다. 까만 열매가 그대로 겨울을 나는데, 왜인지 아직 새들이  덤비지 않는 것을 보면  덜 익어서는 아닌 것 같고  그 성질이 매우 열하여서 소양체인 새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숲을 지나오니 온실 앞에 다다르는데  옻나무 열매가 주렁 주렁 달려 있는데 역시 옻나무도  독성이 있어서 그런지 열매를 그대로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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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나무와  신나무가 보이는데  안개나무는 백발의 노인이 산발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신나무는 열매들이  마치 수많은 나방들이 날개를 접고 붙어 앉아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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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에서는 아부티론의 빨간색 열매가 눈에 띄었고  아나나스도 피어 있다.  바나나가 열매 달린 것이 키가 크지 않은데도 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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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을 벗어나서 언덕으로 오르니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그 앞에 억새 밭이 제법 있어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내려오니 만첩빈도리가 길 따라서 심어져 있고  다 내려온 습지에는 큰 골풀이 줄기만 보인다. 골풀은  등심초로 이뇨에 사용되는데 임질을 다스리는 데는 매우 효과가 있다. 소양인들은  이를 사용하면  즉시 임질이 멈춘다.

또한  여성의큰골풀 1120-2016 물향기수목원-012.JPG 세균성으로 일어나는  방광염에도 소양인들은 지부자와 함께 등심을 사용하면 즉시 해결이 된다.당연히  염증을 없애기 위한  연교 금은화도 곁들여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폐열을 청하게 하는 지모도 군약으로 사용해야 한다.  인체는 회음부인 극음지지에서 청양이 발생하여서 신국을 타고 오르면  온양이라고 하였고대장국을 타고 오르면 청양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청양의 기운이 잘 오르지 못하는 소양 태양인들 중에  소양인은  대장국의 청양이 오르지 못하여서  대장국이 열에  빠지고 대장국이 열에 빠지면  열증으로  위수열리열병이 되는데  이는 즉 대장수열리열병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증상은 변이 굳는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청양이 대장소장으로 오르지 못하면  소장의  표인 (소장을 본으로 삼을 때)  방광부위가 열증에 싸여서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양약에서는 cyproxacin 을 사용하지만  한방에서는  지부자와  등심을 사용한다. 위수열리열증에서  땀을 흘리는 증상이 과도하고  상초로  열이 왕성할 때는  석고 지모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초증상은  소양인에게  나타나는 흉격번열증과 더불어서 삼소증을  말한다.

진대의 갈홍은 포박자로 유명하다. 갈홍의 주후비급방에  등심과 별갑을 사용하였다. 산 후에 산모가  위로 기가 치밀어서 어쩌지 못하고 안절부절할 때 이를 사용하였다. 별갑 한 량을 누렇게 태워서 가루로 만들고,  등심 한 줌을 물 두 되에 달여서 1/4인 오 홉으로 만들어서 이 물에다가 한 돈을 식전에 먹고  식후에는 꿀물에 한 돈을 먹는다고 하였다.

肘後備急方卷三晉葛洪撰

<<楊氏産乳>>療上氣急滿坐卧不得方  鼈甲一大兩炙令黄細搗為散  取燈心一握 水二升煎取五合 食前服一錢匕食後蜜水服一錢

성제총록에 활석산방은  소변이 막히고 오줌길이 아프고 잘 나오지 않는 데, 활석과 해금사, 목통의 세가지 약물을 가루로 내어서 등심을 다린 물에다 마시면 낫는다고 한다. 이 약들은 모두 소양인 약으로 소양인 표병의 약이다. 소양인 표병은 비수한 표한병으로  두부에서부터 내려오는 뜨거운 기운이  등을 타고 내려올때는 청음이라고 하였는데  이 청음이 등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안으로 설사가 나오면서 바깥으로는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원래 이는 수분이 소장에서 분리되지 못하면 소변이 막히고 설사가 나오기 때문에 이때 삽제를 사용하여서 설사를 그치게 하면 소변이 나오게 된다.  어린 아이들이  설사가 나올 때 홍차를 마시면 설사가 그치는 이치가  소변으로  수분을 유도하여서 대변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聖濟總録纂要卷十五 休寧程林纂 大小便門)

  • 滑石散方 治小便淋澀 疼痛不通
  • 滑石 海金沙 木通等分 三味為散 每服二錢煎燈心湯調下

이 골풀은  일본에서는 다다미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유럽에서는  중세 영국에서 서민층에 등잔을 밝히는 심지로 소기름에다가 골풀을 심지로 사용해서 불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사는 훨씬 오래전에 이솝우화에도  이 골풀등잔이 등장하고 있다. 골풀등잔(rushlight)이 자신의 빛을 자랑하다가 바람이 한번 부니 그만 꺼지고 말았다고 하여서 이미 이솝이 살았던 그리스 시대에도  이 골풀이 불을 밝히는 심지로 사용되었다.

소양인은 심화가 성한 체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화란  고전적인 한의학의 표현인데, 치자 황련 등이 모두 이러한 심화를 가라앉히는 약물이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고혈압의 증상이다.  소양인은 짜게 먹으면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데  소금을 잘 배설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소양인이 혈압이 올라가면 눈에 실핏줄이 서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맥상은 홍맥이 된다. 그리고 소변이 줄어든다. 이는 동무 공께서 위수열리열병의 흉격번열증으로 보신 증상인데  오늘날의 소양인의 고혈압 증상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등심은 고전에서도  눈의 충혈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즉  등심이 이뇨를 시키고  심근의 수축력 정확하게 말하면 좌심실의 수축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심비대를 억제하고  심장에서부터 혈류를 신장으로  주입시킴으로써  소변이 나오게 하는 힘을 이용한 것이다.

傷寒論注釋卷三辨太陽病脉證并治法中第六

  • 中風發熱六七日 不解而煩 有表裏證 渴欲飲水 水入則吐者 名曰水逆 五苓散主之
  • 未持脉時 病人手义自冒心 師因教試令欬而不欬者 此必兩耳聾無聞也 所以然者以重發汗虚故如此
  • 發汗後飲水多必喘 以水灌之亦喘 發汗後水藥不得入口為逆 若更發汗必吐下不止
  • 發汗吐下後虚煩不得眠若劇者必反覆顛倒心中懊憹梔子豉湯主之
  • 梔子豉湯方
    • 梔子十四枚擘味苦寒
    • 香䜴四合綿裹味苦寒
    • 酸苦湧泄為陰苦以湧吐寒以勝熱梔子豉湯相合吐劑宜矣
  • 右二味以水四升先煮梔子得二升半内豉煮取一升半去滓分為二服温進一服得吐者止後服

금나라의 성무기가  주석을 붙힌 상한론 주석 3권의 태양병의 병증에 대한 글에 보면 소양인 병을 소음인 병과 구별하고 있다. 상한론은 외부사기가 태양의 표 부위로 침범하여 일으키는 병으로  땀이 나면서 풀리는 태음인 병과  땀이 나면서 풀리지 않는 소음인 병으로 크게 나누어서  마황탕과 계지탕으로 분리하여 치료하였다. 당시 중경 선생은 이 같은 마황과 계지탕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각기 체질마다 이러한 탕제의 사용에 대하여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보았다. 중풍에  발열이 있은지  6-7일이 지나도 병이 풀리지 않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난다. 즉 표증인  발열과 리증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같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에  첫번째 경우는 소양인을 본 것이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려고 하지만 물이 들어가자 마자 토한다 이를 수역이라고 한다. 오령산으로 치료하였다. 이는 일종의 식도 협착이다.  교감신경은 호흡과 식도를 이완시킨다. 그리하여  한의학적인 음의 개념은 기도를 확장하고 식도에서 위로 넘어가는 분문을 이완시켜서 호흡이 들어오고 음식이 내려가게 하는 증상이다. 그런데  교감신경의  adrenergic 한 에너지가  부족한 소양인은  몸이 양화 되면서  즉 알칼리화 되면서  분문이 좁혀지고  호흡은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이때  음식과 물이 모두 내려가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게 된다.

중경 선생께서는 상한중풍에 치료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낫지 않는 환자를 보았다. 바깥으로는 표증인 열이 있고  안으로는 가슴이 답답한 경우 두 가지의 다른 경우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중 한 증상이 위에  설명한 오령산 증상으로  소양인이 물조차 먹지 못하고 토하는 증상이며,  다른 하나는 아직 채 진맥도 하지 않았지만 환자가 손으로 교차하여서 심장을 덥고 있는 즉 (手义自冒心)으로 표현되는 가슴에 양손을 대고 있는 환자를 보게 되었다. 이 경우 선생께서 기침을 해보라고 하여도 기운이 없어서 기침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필히 양쪽 귀가 꽉 막혀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이니, 이는 거듭 땀을 내서 체액이 유실되어서 허약해진 연고로 이같이 된다고 하였다. 이 경우는 소음인이  발열의 원인인  외부 사기를 치료하려고 발한을 시켰는데  낫기는 커녕  땀으로 체액이 손실되어서 혈액량이 줄어들면서 맥상은 미약해지고 심장은 줄어든 혈액을 보상하기 위해서 빨리 뛰게 되는데,  이때 가슴이 답답하여서  손으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지만  혈액이 말초로 머리로 가지 못하여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때 전체 순환혈장량이 줄어들면  머리의 청규로 혈액이 가지 못하면서 어지럽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심장은 뇌에서 피를 요구하므로 적은 양으로 움직이면서 빨리 뛰게 된다. 즉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發汗後飲水多必喘 以水灌之亦喘 發汗後水藥不得入口為逆 若更發汗必吐下不止
  • 發汗吐下後虚煩不得眠若劇者必反覆顛倒心中懊憹梔子豉湯主之

또한 세번째 증상으로 한법으로 땀을 내고 나니 열이 풀리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여져서 조갈이 나면서 물을  마구 들이키면  반드시 호흡이 가빠지고 기침을 하게 되는데  물을 천천히 마시게 하여도 역시 기침이 나온다. 한법을 사용 후에  물이고 약이고 내려가지 않는 것을 역증이라고 하니  이러한 경우 다시 한법(마황탕법)을 사용하면  반드시 설사와 구토가 그치치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거듭 발한을 시켜서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가 그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잠을 못자고 증상이 심해지면 반드시 이리저리 뒹굴면서 가슴이 답답해 어쩔 줄 모르는데 치자시탕을 사용하라고 하였다. 치자와 담두시(발효시킨 콩으로 쑨 메주)를  사용하여서 소양인의 비수한 표한병을 치료한 기록이다. 그래서 치자는  심장의 화를 가라앉히는 약으로 심근 수축력을 강화시키는 약이고  등심은 아래로 소변을 이롭게 하여서 심근 수축으로 인한 신장의 혈류 증가를 이뇨로 빼는 상하에서 같이 움직이게 하는 약이다. 즉 사심화 자신수 통리수도( 瀉心火 滋腎水 通利水道)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심근 수축력의 강화와 신장의 이뇨 기능을  도와서  혈압이 떨어지면 가슴 답답한 증상이 사라지고  안구 충혈도 없어지고 소변 불통으로 인한 요도의 통증과 불나는 증상도 같이 사라진다. 치자는 위에서 혈액은 좌심실의 수축력을 도와서 전신순환을 시키는 약이며 이러한 심근 수축에 의한 신장혈류량의 증가를 등심이 이뇨를 통하여서 배설함으로써 체내의 소금 농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중경 선생은 이 같은 증상에서 소음인 증상과 소양인 증상 두 가지를 보게 되는데  애초에 상한 중풍의 치료에 있어서 태음인은 마황발표법이 잘 들어어 병이 이렇게 까지 진행하지 않고, 나머지 소음 소양이 발한법을 사용하였는데  병이 리증인 흉번증과 표증인 열증이 같이 나타나므로, 이를 다시 한번 발한시켜서 체액탈수가 일어나는 소음인의 양수교차하는 수차자모심의 증상과  소양인의 약부득입구이 천과 허번부득면의 증상을 보게 된 것이다.

소양인과 소음인은 모두 대변불통증이 있는데  이는 아래에서부터 찬 기운이 복부와 배부로 올라가지 못하여서 이다. 소음인은 올라가는 양기 중에 등을 타고 올라가는 온양이 불승하면 땀이 등덜미에서 나는데 이 경우는 소변자리의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난다. 일찍이 중경 선생도 이 부분에 대하여서 면밀하게 관찰을 하였다.

소양인은  올라가는 양기 중에 복부를 타고 올라가는 청양이 불승하면  앞가슴으로 목 언저리로 땀이 나는데 이때는 소음인과 다른 게 소변이 불통한다. 그래서 신수열표열병이나 위수열리열병은 모두 땀을 기준으로 하고 변비가 생기지만 소변의 리불리가 소양 소음을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오늘 본디 목적은  이전에  원고를 썼던  줄풀을 보고자 하였는데  막상 줄풀을 보려 연못가에 오니  줄은 다 베어버려서  뿌리쪽만 남아 보이지 않고 부들만 여기 저기 잎새가 보인다. 이리 저리 돌아서 또 숲을 지나는데  허브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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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적으로는 소음인 약으로 보이는 탄지(Tansy –Tanacetum vulgare)와 펜넬 ( Fennel) – 회향 종류 그리고 카모마일 등이 보였다.  그 냄새가 매우 자극적이고  허브들은 오히려  추운 날씨에  그  성질이 더욱 뚜렷해지는지 더울 때의 향내보다  냄새가 더욱 심하였다. 탄지는 강력한 향기와  추위에  잘견디는 성질로  주로 살충효과로 사용되는데 tanacetum이라는 뜻은 “불멸의 영원히”라는 뜻으로 이를 이용하면 부패를 방지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wiki에 실린 글을 인용하면 유럽의 전역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자생하던 식물이지만 시베리아와 지중해의 섬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이를 키워서 허브로 사용하였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정원에서 꼭 필요한 식물로 여겼다. 8C의 이탈리아의 왕이된 샤렐르망 대제의  herb garden에서도 키워졌고  스위스의 베네딕트 수사회에서도 이를 키워서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주로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제로, 류타티즘 환자에게 소화장애, 발열성 질환이나, 홍역에 사용되었다. 또한  탄지는 15세기에 여성의 임신을 돕고 유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소음인들에게 해당한다. 그러나 고용량에서는 유산을 시키는 데 사용되었다는 상반된 보고도 있다. 또한 탄지는 얼굴 세안에 사용되고 미백 효과도 있다 한다.  Irish의 전통전인  방법은  소금과 tansy를 섞은 물에다 목욕을 하면  관절의 통증이 없어진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pharmacopeia에서는 이를 발열, 오한 그리고 황달 등에 사용한다(wiki).

History and distributionTansy is native to Eurasia; it is found in almost all parts of mainland Europe, as well as Britain and Ireland. It is absent from Siberia and some of the Mediterranean islands.[2] The ancient Greeks may have been the first to cultivate it as a medicinal herb.[3] In the sixteenth century it was considered to be “necessary for a garden” in Britain.[4]

History of uses  –Tansy has a long history of use. It was first recorded as being cultivated by the ancient Greeks for medicinal purposes. In the 8th century AD it was grown in the herb gardens of Charlemagne and by Benedictine monks of the Swiss monastery of Saint Gall. Tansy was used to treat intestinal worms, rheumatism, digestive problems, fevers, sores, and to “bring out” measles.[3][5][6][7][8]

During the Middle Ages and later, high doses were used to induce abortions.[6][9][10] Contradictorily, tansy was also used to help women conceive and to prevent miscarriages.[5][6][11] In the 15th century, Christians began serving tansy with Lenten meals to commemorate the bitter herbs eaten by the Israelites.[8][11] Tansy was thought to have the added Lenten benefits of controlling flatulence brought on by days of eating fish and pulses[5][6] and of preventing the intestinal worms believed to be caused by eating fish during Lent.[12]Tansy was used as a face wash and was reported to lighten and purify the skin.[5][6] In the 19th century, Irish folklore suggested that bathing in a solution of tansy and salts would cure joint pain.[13] Although most of its medicinal uses have been discredited, tansy is still a component of some medicines and is listed by the United States Pharmacopeia as a treatment for fevers, feverish colds, and jaundice.[3][6][11][medical citation needed]

탄지는  그 강한 향기의 주성분인 volatile oil을 함유하고 있어서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가 있고 이를 내복할 때는 oil이 분해되어서 독성물질이 나오는데 이는 기생충에게 매우 toxic 하여서 구충제로 사용되었다. 또한  해충을 제거하는 데도 사용되는데  특히 절지동물인 거미, 지네 등에게 유효하다.

탄지는 thujone을  포함한다. 그래서 US FDA는 이를 알콜음료에 첨가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탄지는 가끔 blue tansy oil과  혼동되는데  이는 tanacetum annuum 으로 – 일반적인 tansy인 tanacetum vulgare와 성분이 완전히 다르다.  blue tansy oil은  thujone의 성분이 없는 대신에 chamazulene이라는 성분이 있다.

Toxicity

Tansy flower: detail.

Many tansy species contain a volatile oil which can cause contact dermatitis in sensitive individuals. If taken internally, toxic metabolites are produced as the oil is broken down in the liver and digestive tract. It is highly toxic to internal parasites, and for centuries tansy tea has been prescribed by herbalists to expel worms. Tansy is an effective insecticide and is highly toxic to arthropods.[21] Because it contains thujone, the U.S. FDA limits the use of tansy to alcoholic beverages, and the final product must be thujone-free.[22] Tanacetum annuum is often confused with common tansy (Tanacetum vulgare) but the former produces an essential oil that is completely different chemically as it contains no thujone and high amounts of chamazulene making the oil dark blue in color, giving rise to it common name of Blue Tansy Oil.[23][24] Despite claims by some unethical resellers of essential oils who adulterate the very expensive Blue Tansy (Tanacetum annuum) oil with the much cheaper oil from Tanacetum vulgare, it should be noted that the oil from Tanacetum vulgare is never blue in color as it contains no chamazulene.[25][26] For this reason a high thujone oil from Tanacetum vulgare should never be referred to as “Blue Tansy” oil and any such blue oil containing significant thujone is an adulterated product.

탄지에서  구분해야 할 것은 이전에  맛보았던 jackpot tansy이다.

%ec%9e%ad%ed%8f%bf%ed%83%84%ec%a7%80일전에 내가 이 약을 맛보았을 때는 처음에 비린 듯하면서 쓴 맛이 느껴졌는데 감국잎하고 비슷하고 매우 쓴 맛을 느꼈다. 혀가 심하게 따가웠고  매운 맛이 쏘듯이 맵고 나중에 엄청 더 매워졌다.

염 선생은 뒷목이 뻣뻣하게 느꼈고 소양인 박 선생은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였다. 태음인 정 선생은   눈이 밝아지면서  속이 편하고  무언가 붕 뜨는 느낌을 받았고, 태음인 고 선생은 맛이 좋다고 느꼈고  기분이 좋고 속도 편하고 트림도 나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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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지 중에는 위의 잭폰탄지 말고  불루탄지 혹은 camomille blue 라고 불리우는 Tanacetum annuum 이 있는데  이는  가격적으로는 tanacetum vulgare와 매우 달리 가격이 싸다. 이는  T. vulgare 에 있는 thujone 성분이 없다.  thujone은 향쑥이라고 불리우는 쓴 쑥의 성분이다. 이는 GABAa  수용체는 소음에 작용하는 기전이다. 뚜존의 이름은  Thuja 속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Nootka cypress나 약간의 junipers (향나무속) mugwort(넓은잎외잎쑥) 오레가노, 카몬세이지와  탄지에서 발견되며  향쑥이라고 불리우는 wormwood(Artemisia vulgaris) 등에  함유되어 있다.  또한 여러 종류의 mentha 종류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mugwort는 여러 가지 종류의 쑥이 이 이름으로 사용되므로 정확히는 어느 것인지는  연구해 보아야  한다.

artemisia-vulgarisnookta-cypress

성분 하나가 식물 전체의 속성인 태소음양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성분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높은 peak 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성질이 달라진다.

여기서 wiki에 의하면 artemisia absinthium에  포함되고 있는 성분인 투존은 GABAa 수용체의 길항제로 작용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소음성으로  소양인 약이 될 수 있다. 이 GABAa의  길항제는 중추를 억제하는 작용을 방해하므로 인하여서 오히려 경기를 유발한다고 한다. 마치 소양인 약물처럼 설명되고 있다. 이 부분은 후에 보충을 다시 하겠다.  쑥 중에서 넓은잎 외잎쑥(Artemisia stolonifera)은 이전에 유명산 뒷골을 타면서 소양인 약물로 분류했는데 이는 thujone이 소음성이라 GABA a의 길항 역할을 하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juniperus는 대부분 소음인 약물이고 위에서 본 탄지도  소음인 것으로 추론되는데 이 투존의 성분이 오레가노라는 소양인 허브와 멘타 즉 박하 종류에서 있다고 보면 아직 맛보지 못한 Nootka cypress의 성향을 분류하고 난 다음에 여기에 대한 결론을 내려고 한다.

 

Artemisia absinthium contains thujone, a GABAA receptor antagonist that can cause epileptic-like convulsions and kidney failure when ingested in large amounts

Thujone is found in a number of plants, such as arborvitae (genus Thuja, hence the derivation of the name), Nootka cypress, some junipers, mugwort, oregano, common sage, tansy, and wormwood, most notably grand wormwood (Artemisia absinthium), usually as a mix of isomers in a 1:2 ratio. It is also found in various species of Mentha (mint).(wiki)

이제마 선생님 전기 (이능화 저)

이제마(李濟馬) 

이능화(李能和)
1869~1962. 학자. 호 간정(侃亭). 충북 괴산 생. 정동 영어학당, 한어학교, 관립 법어(프랑스어) 학교 졸업. 칭경례식사무소 위원을 거쳐, 관립 한성 외국어학교 학감 역임.
저서에 <조선불교통사>, <조선무속고>, <조선해어화사>, <한국도교사> 등이 있음.

선생의 성은 이씨요 휘()는 제마요 본관은 전주이시다. 이조 헌종 4년(무술)에 함흥 남리 (南里)에서 출생하셨다. 선생의 조부는 일찍이 진사를 지내셨는데 하루는 꿈을 꾸시던 중 한 마리 용마(龍馬)가 시내를 건너 오는 것을 보셨다. 이윽고 꿈을 깨고 보니 어디서 고고한 소리가 들리며 이때 바로 제마 선생이 출생하였다. 그래서 선생의 조부는 이 아이는 우리 집의 천리구(千里駒)라고 하며 명명하되 제마라고 하였다. 선생이 장성하여서도 이 이름으로 행세하신 것이다.
선생이 평상에 병법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호를 동무(東武)라고 하셨다. 선생의 상모(相貌)가 웅위(雄偉)하고 안광(眼光)이 형형하여 마치 샛별빛같이 빛났었다. 그리고 권골이 융기하고 음성이 종소리 같아서 사람이 한번 보면 가히 비상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집안이 요부(饒富)하여 집에는 서고가 있고 장서가 많았는데 선생이 이미 10세에 문리(文理)를 통하여 서고에 나아가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경사(經史)와 자집(子集)을 모두 통달하였는데 그 중에 주역을 더욱 좋아하셔서 그 오의(奧義)를 연구하시기에 몰두하였다. 때로는 식사를 폐하고 연구에 심혈을 다하기 때문에 집안 사람들이 술을 들어 밥을 입에 떠넣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누년(屢年)을 연구하는 동안에 마침내 주역의 이치를 통달하여 그 묘체를 발명케 되었다. 대개 사람이나 물체를 물론하고 사상(四象)의 덕(太陽, 少陽, 太陰, 少陰)을 구비치 않음이 없었다. 이로써 헤아려 본다면 사람 알기를 신과 같이 할 수가 있다. 곧 사람의 수명 장단과 부귀빈천과 심술(心術)의 선악과 또는 길흉회린(吉凶悔吝)을 불로 비춰 보듯이 호리(毫釐)도 틀림없이 잘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선생의 나이 20이 되매 생각한 바 있어서 가재(家財)를 기울여 널리 빈민을 구제하고 또는 조선의 산천과 인물을 구경하던 중 나중에는 만주까지 가서 두루 산천을 구경한 바 있다. 유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 들렀던바 의주의 부호 홍씨가 집에 만권 도서를 비치하고 정결한 초당을 지어 일반에게 열람시킴을 알게 되었다. 선생도 역시 홍씨 집에 가서 그 도서를 득람하며 지식을 더욱 넓히게 되었다. 이로써 경향을 물론하고 선생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고종 때에 조정에서 널리 인재를 구하게 되어 장신(將臣) 김기석(金基錫)이 특별히 선생을 조정에 추천하여  “이제마는 힘이 넉넉히 천 근을 들 수 있고 안목이 충분히 만 리를 볼 수 있다.” 하고 아뢰었다. 조정에서도 그의 추천을 양승(諒承)하고 특히 제마 선생을 불러 군관(軍官)의 직을 임명했다. 그때 고종이 춘천에 이궁(離宮)을 경영하려고 하셨는데 하루는 고종께서 제마 선생을 불러 조용히 말하되 “내가 듣건대 춘천에 피난할 곳이 있다고 하는데 경이 가보고 자세한 것을 보고하라.” 하였다. 선생이 왕의 명을 받고 춘천에 가서 실정을 조사한 후 서울로 돌아와서 왕께 알현하였다. 왕이 기뻐 묻기를 “춘천이 과연 피난할 만 하더냐” 하였다. 선생이 아뢰기를 “산은 심히 좋으나 전국 사람이 피난한다면 모두 수용할 수가 없소이다.” 하였다. 왕이 불쾌히 여기시어 퇴거하라 명령하시고 그로부터 소우(疎遇)하여 다시 부르시지 않았었다. 후에 진해 현감에 임명되었는데 그때는 임진 계사년경이었다. 선생이 부임하여 시무하는 중에 한 죄인이 있어서 매를 맞게 되었다. 그자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며 신음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선생이 당에 내려가 그자의 엉덩이를 쓸어 주고 그만 석방한 후 우연히 탄식하되 ” 비록 국법이 있어서 죄인을 태형한다 할지라도 사람으로는 차마 할 수 없다.” 하였다. 그 후 갑오년 여름에 벼슬을 그만두고 서울도 돌아오셨다.                                                                                                                   선생은 필자의 집에서 유숙하시며 우리 선친과 우교(友交)를 위목(爲睦)히 하셨다. 그때 선생이 사상의서(四象醫書)를 저작하셨다. 선생은 매일 남산에 올라가 송엽(松葉)을 뜯어 씹으시며 약리(藥理)를 연구하셨는데 송엽의 성질이 태양인에게 가장 적합하였다. 선생은 태양인으로 자처하셨는데 병이 나면 건시(乾枾)와 교맥면(蕎麥麵)을 복용하시면 쾌유하셨다. 필자도 안질이 나서 몇 번이나 눈이 멀었는데 선생이 내 안질을 보고 “네 눈병은 소양인(少陽人)의 위열병(胃熱病)으로 생기는 병인즉 보통 안질로만 치료하면 나을 수 없다. 급히 석고와 활석을 조제하여 먹어라. 그 중량은 대변이 순활히 내릴 정도면 좋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집 사람들은 활석은 지극히 냉한 것이라 함부로 쓸 수가 없으니 처음은 조금씩 먹고 차차 많이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처음은 조금씩 먹었으나 약 반 근 가량 먹은 후에 비로소 대변이 원활히 되고 안질도 전쾌하게 되었다. 이에 선생은 미리 소양인에게 응용할 만한 4, 5가지 약방을 만들어 모모 증세에는 모모 약방을 응용하라고 부탁하시고 훈계하시기를 ” 대개 범인의 병이란 7정(七精)의 절도를 잃는 데서 발하는 것이다. 너는 소양인인즉 애로편급(哀怒偏急)을 주의하여 함부로 애로의 정을 발하지 말라. 애로의 정을 함부로 발하지 아니하면 평생에 병이 없을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삼가 지키고 그 훈계를 어기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 병이 많았으나 30 이후부터는 자못 건강한 것은 선생의 교훈한 덕이었다.
선생이 을미년경에 함흥 옛 마을로 돌아오셨으니 이는 어머님이 병드신 까닭이었다. 병신년에 남중(南中)의 비괴(匪魁) 최문환이 그 도중(徒衆)을 데리고 강원도를 거쳐 함흥에 들어와 관찰사 대리 목모(睦某)를 살해하고 전단을 군현에 두루 붙여 함경도 내는 물끓듯하게 되었다. 때의 함흥의 부로(父老)들이 의논하고 선생으로 하여금 난국을 처리하게 하였다.
선생이 기계(奇計)를 써서 최문환을 잡아 영옥(營獄)에 가두고 비밀히 3공형(三公兄)을 경사(京師)에 보내어 새로 관찰사 김유성을 맞아오게 되었다. 김유성이 마침내 부임하여 최문환을 베어 죽이고 함남의 난을 평정하였다. 관찰사가 선생의 공을 생각하여 고원 군수를 주천(奏薦)하였으나 선생이 굳이 사양하고 취임치 않았다. 그 후엔 다만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짝을 삼아 저술과 가르치기로 일을 삼았는데 그때 저술한 것은 사상의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1책이었다. 이것은 특히 병고로 신음하는 창생(蒼生)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에서 하신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문인으로는 김영관(金永寬), 한직연(韓稷淵) 등이 있었으며 또는 구수심전(口受心傳)한 사람도 많았고 이외에 사숙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에 사상의학이 천하에 퍼져서 우리 의학계에 한 이채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의수세보원>이란 실은 선생이 창작한 것이 아니고 모두 고인(古人)의 의방으로 특별히 사상(四象)을 응용하고 분별한 데 불과하다. 그 예로는 같은 하리제(下痢劑)라고 할지라도 석고는 소양인의 병에 적당하고 대황은 태음인의 병에 적당하며 파두는 소음인의 병에 적당하다. 그리고 같은 보익제(補益劑)라 할지라도 인삼은 소음인의 병에 적당하며 만약 소양인이 복용하면 도리어 해가 되고 녹용은 태음인에 적당하며 숙호는 소양인에 적당하다고 한다. 이로써 모든 것을 미루어 가히 알 수가 있다. 이 책은 성명론(性命論)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에 이르렀는데(소음인의 위가 밖에서 열을 받으면 열병, 소음인의 위가 안에서 냉을 받으면 한병으로 논하고 소양인의 비장이 겉에서 냉을 받으면 한병, 소양인의 위가 속에서 열을 받으면 열병으로 논하고 태음인의 위장이 겉에서 냉을 받으면 한병, 태음인의 간이 속에서 열을 받으면 열병, 태음인이 속이 만져지면 소장병이라 논한다.)  나중에는 사상인변증론(四象人辨證論)으로써 끝을 막았다. 그 이치가 지극히 묘하고 그 효력이 신과 같아 가히 전 사람들이 발명치 못한 바를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인을 변별하는 방법으로는 체격과 상모와 성질과 행위 등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의심이 있어서 잘 알 수가 없는 경우에는 선생은 그 사람과 함께 숙식을 같이하며 수삼 일 지내면서 여러가지로 물어본 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태도가 이같이 신중하고 정녕(叮嚀)하였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생의 학(學)은 격치(格致)요 선생의 서(書)는 인술(仁術)이었다.
고종 4년 경자에 선생이 돌아가시니 향년이 63세였다. 그 익년에 명인(名人)이 이 책을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

부동의수세보원 선생 자발(附東醫壽世保元先生自跋)
“이 책은 계사년 7월 39일 시작한 이래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쉴 틈이 없이 하여 익년 4월 13일에야 마쳤다. 소음인과 소양인을 논한 것은 대략 상세함을 갖추었고 태음인과 태양인을 논한 것은 삼가서 그 간략함을 이루었다. 모든것의 경험이 두루 미치지 못했는데 정력이 미비한 까닭이다. 날짜를 기록하였으니 이르지 못한 것은 생각을 하여라. 만약 태음태양인과 같으면 헤아려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찌 간략한 것이 손해가 되지 않으리오. 만 가구나 되는 마을에 도공이 하나면 그릇이 부족하고 백 가구가 되는 마을에 의원이 하나면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부족할 것이다. 반드시 의학을 널리 알려 집집마다 의술을 알고 사람마다 병이 무엇인지 알면 연후에는 가히 원래의 수명을 보전하여 세상을 살 수 있으리라. 갑오년 4월 13일 함흥 이제마는 한성(漢城)의 남산 가운데서 이 책을 마친다. 오호라, 갑오에 쓰기를 마친후에 을미에 고향으로 내려가 경자년에 이르렀도다. 인하여 이 초본(草本)을 고치니 성명론에서부터 태음인에 관한 여러 이론에 이르기까지 각각 증산(增刪)하였는데 태양인 이하 3논(論)은 증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 갑오년 옛 판본으로서 간행하는 것이다.
광무(光武) 5년 신축 6월 일
함흥군 율동계(栗洞契) 신간(新刊) ; 율동 선생 묘지에 소재한 문인 등이 설치한 계의 이름
문인(門人) 김영관, 한직연, 송현수, 한창연, 최겸용, 위준혁, 이섭항”

(상기본은 文一平 선생의 朝鮮名人傳에 실려있는 李能和 선생께서 쓰신 동무공전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전자본 중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