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과 기
동양에서는 우주만물의 모든 사물에 다 기(氣)가 있다고 보았다. 흔히 생기(生氣)가 있다, 활기(活氣)가 있다고 말할 때의 그 기(氣)를 생명의 근원으로 여겼다.
서양의 과학은 생명은 탄수화물과 산소가 결합하는 산화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러한 에너지를 더욱 포괄적인 개념인 기(氣)로, 더 구체적으로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두 이러한 음양의 기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사람은 이러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를 순환시키며 생명을 영위하고 있다. 자연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순환하고 하루는 밤낮으로 늘 바뀐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기와 양기의 두 가지 기운이 서로 조화하면서 순환할 때 생명 현상이 유지된다. 음양의 화평을 얻는 것이 바로 중용의 도이고 약(藥: 초두 변에 즐거울 락[樂]을 써서 풀의 힘을 빌어서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의 순환에 모순이 생기면 인체에는 질병이 생겨난다.
이같은 기(氣)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한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학은 기의 사상으로서 기를 학문적으로 분류하는 체계이다. 이는 춘추 이전부터 시작되어 송 이전까지는 도가(道家)의 전유물로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비전(秘傳)되어 내려왔다.
한의학 또한 음양학에 뿌리를 두고 기를 분류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심오하고 난해하여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한의학은 3,0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의 임상 실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임상과 체험을 기의 관점에서 분류하고 체계화하였기에 한의학으로 들어가는 문은 너무나 어려웠다. 더구나 한의학의 고유 영역인 음양학이 실제로 잘 응용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구한말의 유학자이며 성리학자이던 동무(東武) 이제마 공께서는 일찍이 주역(周易)에 몰두하여 주역의 변화의 상이 자연분류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해하던 음양학설을 구체적으로 인체에 적용하여 사상의학을 창시하셨다. 사상의학의 뿌리는 고대 음양학의 남상(濫觴)인『황제내경(黃帝內經)』의「통천편(通天篇)」에서 서술한바 태소음양인론에 있다 하겠다.
기의 학문은 기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자를 그려 놓고 사자 머리에 사슴뿔을 달아 논다면 누구나 이를 틀렸다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용이라면 발톱을 세 개로 그리든 네 개로 그리든 아무도 누가 맞았는지 평가할 수가 없다.
한의학의 분류체계나 기(氣)의 체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해석과 설명이 난무하기까지 한다.
오늘날 체질에 대한 논의도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은 사상의학 또한 이처럼 바로 보이지 않는 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의학의 분류체계는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고유의 음양론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도 극음이나 극양으로 편파되지 않고 내부에는 음양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춘하추동의 뚜렷한 경계가 있듯 사람에게는 태소음양인의 구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비록 교육과 수양을 통해 극복될 수는 있지만 타고난 태소음양인의 체질적 장단과 장부의 성리는 변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원리를 찾아 사상의학을 깊히 심득하게 되면 오늘날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불치나 난치에 도전하고 길을 열어주는 좌표를 확고히 세울 수가 있다.
음양은 무엇인가.
음양은 쉽게 밤과 낮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해와 달로도 이야기한다.
사상학에서는 사람을 음인과 양인으로 나누어 태소음양인을 분류한다.
그런데 사람이란 이리 보면 음인 같고 저리 보면 양인 같고 정말로 다양한 성질과 행동이 표현되기 때문에 체질을 알기가 정말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격과 행동 가운데 진정한 체질 분류의 핵심 열쇠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즉,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행동 중에도 태음인만이 할 수 있는 행동과 양식이 있고, 태양인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나 마음의 양식이 있는 것이다.
동무 공께서는 이러한 사람의 행태론을 음과 양에서부터 추론하였다.
쉽게 말하면 오그리는 것이 음이고 펴는 것이 양이다. 봄 여름은 천기가 더워지면서 자연은 움추렸던 것을 펴고 활발하게 순환을 하며 움직이게 된다. 가을 겨울이 되면 천기가 차가워지게 되고 자연은 다시 안으로 수렴하고 내장(內藏)하면서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게 되는데 모든 순환은 느려지고 휴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휴식과 활동, 한번은 고요하고 한번은 움직이는 것이 태극론이다.
인체의 음양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가. 천지의 음양은 해와 달에서 비롯된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달에서 주는 인력이 커다란 음과 양으로 작용하면서 사계를 변화시킨다. 사람의 체내에서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 바로 음양이다.
도가에서는 호흡을 조절하여 인체의 음과 양을 순환시키고 태식, 복식 등의 선도술을 닦게 하였다. 노자(老子) 『도덕경』을 보면 ‘면면약존(綿綿若存)’ 즉 호흡을 가느다란 실을 끌고 나가듯이 조심스럽게 끊지 말고 이어서 약하게도 하지 말고 강하게도 하지 않으면서 체내의 음양 두 기운을 다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음양학은 춘추 훨씬 이전부터 벌써 깊이 있게 연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약물과 침구의 힘을 빌어 인체를 순환하는 음양의 기운을 조절한다. 넘치는 것은 덜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어서 순환의 바퀴가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마다 장부의 크기가 다르고 희로애락의 성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약물뿐만 아니라 수양까지도 음양에 맞추어 장기를 보존하는 방법을 설파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발전된 형이상학적인 음양학을 가지고 구체적인 사람의 체질분류나 병인, 병리, 병증의 분류에 적용시키는 방법이다. 이 구체적인 방법론이 난해하기 때문에 오늘날 의학도들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상의학의 분류체계는 이미 양의학의 신경계나 약물론의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를 포괄하고도 남을 만큼 정교한 분류체계임이 입증되고 있다. 이를 정확히만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결코 서양의학의 객관적인 분류와 한의학이 모순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서양의학의 구체적인 실증체계가 사상의학의 진가를 더욱 밝혀주게 될 것이다. 사상의학의 위대함은 과학사상에서 출발한 서양의학과 만남을 통해서 밝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많은 의학을 탐구하고 사람 고치기를 좋하하는 후학들에 의해서 차츰 그 빛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