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한의학으로 암치료를 할 수 있습니까?

사상의학과 암치료

“한약으로 암이 치료될 수 있습니까?” 
암환자들이 가끔은 찾아와서 위같이 엉뚱한 질문을 한다. 암을 치료받으러 온 환자들이 “항암제도 아닌데 한약으로 암이 치료될 수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만큼 우리 한방은 아직까지 암의 영역에서 진단부터 치료까지 많은 연구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보다 앞서 한양방을 겸한 중국의 현실에서는 한방 항암제가 나름대로 발표되어 있지만 그 공인성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가끔 그 같은 약물에 대하여 문의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가 일제의 수난기를 당하고 해방 이후의 혼란에서 오늘날까지 이르기에는 역사적으로는 중세봉건사회에서 급격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었다.
서양은 왕정에 대하여 시민혁명으로 국민국가를 만들면서 민주주의와 과학을 발달시켰지만, 동양은 왕정의 통치 하에서 서세동점으로 인하여 자주적이건, 외세에 의해 강압적이건 왕정이 몰락하고 근대사회로 이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우리들의 고유의 전통과 문물이 사라졌고, 서양의 위세에 눌려진 동양권의 약화는 자신의 것들에 대하여 봉건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배척하는 경향으로 일관되어 왔다. 수천년 역사를 지닌 한의학의 역사도 이 같은 과정에서 스스로 그 동안 계발해왔고, 연구해 왔던 많은 훌륭한 것들이 버려지고 파묻혀졌다.

특히 조선역사에 있어서 한의학의 위치는 중국과 다르게 신분제로 인하여 중반의 점유물이었다. 그리하여 의학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생들은 양반 아래의 중인계급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일제에 의하여 반상제도가 무너지면서, 스스로 작은 갓을 쓰는 중인계급에 머물기를 싫어하였고, 의업을 계승하더라도 서양의학쪽으로 방향을 회전하였다. 자연 소수만이 한의학의 명맥을 유지해 오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의학이 단절된 역사 위에서 위상을 바로 잡지 못하고 , 일반인들로 하여금 한의학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게 한다.

한의학의 과정에는 서양처럼 객관화와 계량화가 없다.
서양과학은 객관적이고 실증적이며 계량적인 통계방법으로 증명해 보이므로 합리성을 추구하였고, 보편타당한 원리, 보편타당한 증거 위주로 발전해 왔다. 자연 서양의학도 베이컨 이후의 학술사상을 이어받아 이 같은 객관화 개량화 등이 기초가 되어 있다. 한의학이 이 같은 서양의학과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학사조에 기초하지 않는다고 하여서 한의학에 합리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 나름의 음양오행설을 기본으로 하여서 사물을 관찰하였고, 명명하였다.
수천년 동안 사람들의 질병을 관찰하고 처방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역사적인 名家들이 있었고, 이들은 과학사상의 역사 위에서 소개된 많은 서양의 大家들처럼 훌륭하게 자신들의 학문을 수행하여 왔다.

한의학의 놀라운 점의 하나는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2000 년 전의 문자를 오늘날 그대로 해석하고 읽고 하는 것은 우리 동양문명권 외에는 없다. 서양의학의 기초는 그리스에서 시작하였지만 오늘날은 유럽과 미국이 그 주도권을 잡고 있다. 그리고 언어적으로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즉 고대의 전통적인 유산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은 오늘날 한의과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원전이 황제내경이다. 황제내경은 문자적으로 춘추전국을 거치면서 만들어졌지만, 실로 그 이전의 학술사상의 요람이다. 지금부터 적어도 3000년 전의 책인 중국 최초의 문자기록인 황제내경이 그같이 복잡하고 방대하고 정묘하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사상의학도 그 황제내경의 영추(靈樞) 81 편 중의 한 편인 통천편(通天篇)에 기록된 사상인에 관한 기록을  동무 공께서우연히 접하시면서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한의학은 연역적으로 시작하였다. 최초의 책인 황제내경 자체가 신비이다.
그리고 내경에서 내세웠던 사상인론은 그 윤곽만 있을 뿐 실전되어 왔다. 중국의학이 한대의 장중경을 변증논치의 시조로 삼는다면 중경 이후 2000년의 역사 동안 사상인을 언급한 것은 내경의 저술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면 명대의 이중자나 청대의 유창등 몇몇의 가에 불과하다. 이들도 사상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지만 정확하게 사상인을 묘사하거나 응용하지는 못하였다.

황제내경에서의 사상인의 관찰은 실로 명확하고 분명하다. 오늘날 동무 이제마 공에 의하여 계발된 사상의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놀라운 관찰이 있었다. 이는 그만큼의 논리체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 위에서 체질론은 부분적으로 체질의 특성과 약물과의 상관관계를 서술하는 데 그쳤고, 구체적인 사상인론을 언급한 적은 없다.

2000년을 같은 문자를 사용한 한의학의 역사는 그만큼 방대하다.
역대의 왕조는 또한 그 같은 많은 자료들을 집대성하였다. 이는 수많은 인류의학 경험이 그 안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연 역사적으로 명의로 손꼽히는 사람들은 적어도 30년 이상의 세월을 이러한 의학의 숲을 헤메면서 전적을 탐독하고 고인의 경험을 지표로 삼아서 현재의 병증에 응용해 보고 하였다. 또한 음양오행이나 주역의 난해한 운기학적인 바탕이 기준이 되었으므로 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해독 자체가 난해하였다.

한의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처방과 증상을 따지는 학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의학은 훨씬 더 도학적이고 관상학적인 학문에 가까우며 오운육기(五運六氣) 나 음양오행의 기초가 있어야 비로소 약물이나 병의 성질을 이해하고 다룰 수가 있다.

이 같은 방대함과 철학적인 기초에 의존한 한의학은 심오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자연 깊은 사상의 뿌리가 없이 어떤 병에 무슨 처방이 비방이라는 둥 비방찾는 민간방이 마치 한의학인 것처럼 쉽게 알려져 왔다.

구한말에 동무 이제마 공께서 사상의학을 창안하게 된 것은, 동무공 자신이 성리학을 하는 집안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유학과 도학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방대하고 심오한 한의학의 보고에서부터 보물을 캐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황제내경에서 설파한 사상학의 기초와 2000년 이상의 한의학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동무공에 와서 사상의학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한의학에서 경험하였던 개별적인 병증과 약물의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차이를 음양의 상대성이란 관점에서 새로 정립한 것이 사상의학이다. 그리하여 동무 공께서는 사람마다 병증과 반응하는 약물이 다르다는 입론 아래 각고의 노력 끝에 사상의학을 완성하였으니 동양학적인 의미에서는 격물치지(格物致知- 공허한 논리를 배격하고 사물을 직접 체험하면서 그 가운데서 지식을 끌어내는 것)의 실험과 관찰을 거쳐서 사상의학을 완성해 내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과학적인 문자로 기재되어있지 않더라도 서양과학이 기초하는 음양론 즉 신경계의 교감, 부교감신경이나 여러가지 homeostasis 가 바로 한의학에서 2000년 동안 연구해 왔던 음양론인 것이다.

일제 이후의 현대 식교육이 들어오면서부터 한의학은 쇠락하였고, 지금 100년의 우리의 의학사 속에서 아직까지 우리의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직접적으로 맞대고 연구한 업적이 뚜렷이 없다. 그만큼 도외시되고 무시되어 왔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침술마취로 맹장수술이 TV 에 소개된 것이 한의학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우게 되었고, 이후 80년도부터는 사상의학도 세간에 유행하면서 한의과 대학에 매우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는 한의학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있어 우리 전 세대에서 보이던 봉건의 잔재로서 비합리적이거나 노인들이나 찾는 그런 의학으로 보는 관점을 벗어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애호하고 있다. 특히 중풍이나 통증 관리의 영역에서는 양방에서 가질수 없는 침술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암의 분야에서는 아직 뚜렷한 결과들이 보이질 않는다. 후인들이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전인들이 연구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역사 속에 암과 투병했던 경험들이 문헌으로 존재하며 다양한 시대와 의사들 손을 거쳐서 발전되어 왔다. 단지 서양학문이 들어오면서 그 맥이 크게 단절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같은 상황이 온 것 뿐이다.

결국 우리 의학의 역사는 다시금 현재의 발달한 서양의학에서 장점을 취하고, 우리 역사의 보고 속에 파묻혀 있는 보물들을 캐내어서 과거 의학의 진지한 경험, 훌륭한 경험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한의학이 세간에서 이야기 되듯이 부정적인 보약장사로 비치지 않고 훌륭한 치료의학이었다는 것을 후인들이 입증할 때이다.

암에 대한 연구도 이미 2000년 이상의 방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그 같은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약물로써 암을 치료하였던 경험이 있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에 대한 기록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기록의 신빙성 여부는 재검토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선인들의 암에 대한 경험 속에서 현재의 사상의학의 체질론을 결합한다면 서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비록 한의학에 없더라도 얼마든지 암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자연 한의학으로도 암을 치료할 수 있는가. 항암제가 연구가 안 되어 있는데” 하는 것은 우문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암은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완치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치료하다 보면 굉장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제법 보인다. 사상치료를 시작하면 당연히 암의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 맞는 환경을 찾아주기 때문에 저절로 자연치유력이 회복된다. 또한 화학적인 항암제들이 같는 장점과 더불어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들을 갖는 반면에 한방에서는 오장육부의 운기를 순행시키고 기혈을 보함으로써 저절로 암이 물러나가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연과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동양사상은 자연에 순행하고 그 조화에 따르는 것이 질병치유의 최대원리이므로 이 같은 방법 아래서 여러가지 종양에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원고에서는 양방에서 포기한 암인데도 불구하고 한의학적인 방법으로만 치료하여 좋은 결과를 보였던 경험들을 수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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