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의학은 사상학에서 시작한다. 사상학이란 이전 동무 공께서 가르치실 때 비단 의학만 아니라 동양사상의 근간인 태극 사상론을 연구하여서 당시의 세계관이자 우주관이요 사물의 속성과 에너지를 파악하는 기준이었다.음과 양은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음= 인력 양= 에너지로 볼 수 있다.

뉴톤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는데 어느 날 사과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떨어지는 사과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무심히 떨어지는 사과에 작용하는 힘 즉 대지가 사과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였다. 그래서 물질은 질량을 가지면서 두개의 질량을 가진 물질은 서로간에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며 무게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였다.
동양은 이미 2000년 전에 이러한 음과 양의 학설을 태극론을 통해서 설명하였다.자연을 크게 관찰하여서 춘하추동의 변화, 해와 달의 변화, 사계의 교차의 내면에 음과 양이라는 우주적 두개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바로 인력과 에너지로 환원해서 보면 된다.
물질은 인력과 에너지가 결합하여서 여러 가지의 형태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 중에서 인력이 에너지보다 강하면 고체가 되어서 틀이 고정이 되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소음인이다. 소음인은 고지식하다. 자신의 것을 꼭 주장한다. 정확한 시비를 통해서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는지를 구별해 낸다. 철자법 하나 맞춤법 하나라도 틀리면 이를 가지고 시비를 하고 흠도 잡는다. 나의 실수이건 남의 실수이건 잘 용납이 되지 않는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같다. 뿌리는 흔들리면 안 된다. 뿌리는 움직여서도 안 된다. 이 세상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틀만 고집하여서 싹이 나고 잎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면 뿌리는 생명을 잃는다.
틀과 행동 즉 형태와 행동은 서로 간에 필요하다. 음과 양은 서로 간에 상보적이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물질의 삼태를 살펴보자.

물질은 인력이 증가하던가 에너지가 증가하던가에 따라 형태와 속성이 변화를 한다. 얼음은 차가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소음은 차가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굳어 있다. 틀을 꽉 지킨다. 각자 제 할 일을 정해 놓고 경계를 넘지 않는다. 에너지가 안으로 응축되어 틀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에 겨울이 쉬는 것처럼 조용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내면의 즐거음은 무한하고 혼자 휴식하고 사고하고 정리하고 한적한 한가로움을 즐긴다. 하지만 소음성항이 너무 심해지면 아무도 차가워서 다가가지 못한다. 얼음처럼 빙냉하여 자신만을 고집하고 자신을 기준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소음에게는 흔들림이 필요하다. 얼음에 불을 살살 때면 녹아서 출렁이듯이 소음인 약간의 알콜과 약간의 취함이 필요하다. 약간의 운동과 약간의 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무 고집하는 것을 양보하고 몸을 흔들고 취함으로써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일 수가 있다. 춤추듯이 살아야 한다. 일하듯이 살지 말고 춤추듯 사는 게 소음인에게 필요하다.
물질에 에너지가 증가되어서 인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물질의 틀은 없어진다. 얼음이 물로 변하고 물이 기체로 날아간다. 양의 에너지는 물로 변하지만 여기에 양이 지속된다면 물은 없어지고 기체로 변한다. 운동은 있지만 형태가 사라진다. 이러한 성질을 화기(불의 기운)라고 하였다. 오행상 화(火)는 여름에 배속된다. 소양인은 변화의 사람이다. 불이 이리저리 흩어지듯이 일정한 틀을 벗어버리고 변화를 한다. 하지만 이 화인 에너지가 너무 강렬하면 형태에 담을 수가 없이 정신이 없다. 변화가 심하면 변덕이 된다. 개미가 배짱이로 변해버린다. 소음인의 날들은 겨울이라 어느날 눈내리고 양식이 떨어지면 무엇을 먹고 사나 하여 열심히 저축하고 모으고 아끼고 대비책을 마련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하나라도 끌어당기는 소음인과 달리 소양인이 음의 제압이 없이 양만 독성하면 사치와 외양을 꾸미는 데 치중한다.
소양의 에너지는 차가운 얼음을 물로 변화시키고 창고에 쌓아둔 재화를 사무를 이룩하는 자본으로 쓰게 한다.
일을 수행하고 조직하고 천하의 이익을 교역시키는 역활을 해야 한다. 동무 공께서는 소양인을 세회지인이라고 하셨다. 이 세상 도처에 있는 물화를 교역시키는 장사꾼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오늘날로 말하면 물류를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음이 생산을 해내면 소양이 이를 교역시킨다. 여름의 열로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여기 저기 쌓아둔 물건을 흩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면서 이를 취한다. 소양인의 눈은 세상이 무엇이 새롭게 발전하고 무엇이 쇠퇴하는 것을 파악해 내고 (목시세회目視世會) 무엇이 흥하고 무엇이 망하고 어떤 일이 잘되고 어떤 일이 어그러지는가를 알아내, 소양인의 마음이 널리 세상의 교우를 확립하고 일을 수행한다(비합교우 脾合交遇 ).
소양인은 재화를 통하여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재화가 자신의 사치를 꾸미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적절한 격식과 적절한 외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하지만 지나친 격식과 과시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 소양인은 불은 실제하는 힘으로 사용되어야 하지 구름처럼 날아가는 에너지가 되서는 안 된다.
소양인의 날들은 여름이다. 열매가 쑥쑥 자라나서 먹을 것이 많고 언제라도 씨앗만 심으면 자라나서 꽃과 열매를 만들 수가 있다. 사방이 열매라 따먹기만 하면 된다. 이제 결실을 보면서 놀고 즐기고 사치와 문화가 있다. 너무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내 모습을 가꾸고 내 지위를 자랑하고 내 능력을 현시하고 모아둔 것을 탕진하기에 바쁘다. 오행상의 수기는 땅 위에 얼어붙은 얼음이요 오행상의 화기는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이다. 음과 양의 두 극단을 취하면 얼음과 구름이 된다.

얼음은 녹여져서 물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양분을 실어 나르고 만물을 자라게 한다. 물은 농사에 댈 수 있을 때 제 역할을 한다. 만물이 물의 자원을 이용해서 자신을 키워낸다. 나무가 물이 없으면 시들고 사람도 물이 없으면 갈증에 목이 타 괴롭다. 재물이 바로 이러한 얼음이다. 자산이 바로 이러한 얼음이다. 이 재물과 자산이 없다면 굶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일을 이루어 내는 것도 재화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재화이다.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고 자산이 있어야 일을 수행해 낼 수가 있다. 재물은 창에 쌓아두기만 하고 일로 투자되지 않는다면 얼음이 초목을 키워낼 수 없듯이 재물은 죽은 물이 된다. 즉 차고 얼리고 싸늘한 얼음에 그친다. 세상에 이로울 수가 없다. 소양은 여름이다. 여름은 뜨거운데도 태양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사상학의 체용논법 때문이다. 그러나 역학에 익숙치 않은 세대에게 이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그냥 봄을 태양 여름을 소양이라고 이해하고 글을 읽기를 권한다.

소양은 양이 음의 제압이 없이 완전히 분열된 상태이다. 하늘의 구름은 비를 뿌려야 한다. 흩어지는 양기는 음의 제압에 의해서 물로 변해서 만물을 적신다. 양의 열은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만물은 더워지면 쑥쑥 자라나기 시작하고 물을 빨아서 형체를 만든다. 조그마한 싹이 물을 먹으면 위로 자라서 가지가 되고 또 물을 먹으면 가지 끝에 잎새가 벌어진다. 꽃과 향기를 만들어 나비와 벌을 놀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양의 에너지는 물을 녹인다. 얼음이 녹아서 물로 변화는 것은 목기라고 한다. 목기는 음 중에서 양이 나오는 것이다. 음의 제압을 뚫고 양이 나온다.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수가 있고, 물은 아직 수증기가 되지 않으면서 힘차게 대지를 흘러 초목을 관개(灌漑)한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은
봄밤 복사꽃 살구꽃 만발한 뜰에서 연회를 연다는 뜻의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에서 況陽春召我以煙景,大塊假我以文章(항양춘소아이연경 대괴가아이문장) “하물며 따스한 봄날이 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경계로 나를 부르고 대지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니”라고 읊었다.
바로 봄의 따스함이 얼은 물을 녹여서 안개를 피어 오르게 하면서 초목이 물을 머금고 자라나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이 대지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니 이 아름다운 경계를 당해 어찌 글로 쓰지 않을 수 있나 하고 읇었다.
소양과 소음은 두 극단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양과 소음은 사상논법의 소양 소음이다. 고전적 해석은 겨울이 태음이 되어야 하고 여름이 태양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나중에 자세한 설명의 기회가 있을테니 독자분들이 양해하기를 바란다. 주역은 이러한 음양의 변화를 괘상으로 표현하였다.
역의 괘상은 자연의 속성에 대한 음양론적인 표현이다. 사상의학의 출발은 우주자연의 원리인 사상학에 있고 이는 만물의 분화하는 속성에 대한 동양의 표현법이다. 필자는 사상학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부언을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익숙치 않은 사상개념을 쉽게 마음에 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에 실린 사진을 자세히 보고 연구하기 바란다. 금방 음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