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와 사상체질

암과 사상학 
일반적으로 癌이라고 하면 현대의학에서도 아직까지 그 원인과 예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없고, 이렇다 할 치료법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없는 
끊임없이 연구 중인 질환이다.
해마다 많은 환자들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치료법을
제시해주기 어렵고, 환자나 가족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는 질환이다.

그리고 발달한 서양의학의 진단체계에서 CT, MRI, bone scan, 혈액상의
종양표지자 등으로 진단을 하고 추적을 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자라나서 
최고의 시설과 진단을 통하여서 치료를 해보고자 하여도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질환이다.

암은 크게는 종양의 일종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혹이다. 즉 세포가 
돌연변이를 통하여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양을 분류할 때 서양의학에서는 양성과 악성으로 나눈다.
양성은 대체로 발생이 원발부위, 즉 애초에 발생한 곳에 그치며 주로
융기하는 특징을 보이고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예후가 좋다고 평가된다.
반면에 악성종양은 원발한 부위에서부터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전이가 되어 암의 발생부위에서 원격전이가 되며 또 빠른 속도로 자라고 
침윤성이 많고 예후가 안 좋은 것으로 분류가 되며 이러한 악성종양을 
암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각 부위에 생기는 암에 대하여서 서양의학에서는 단계별로 크기와
타장기의 전이성여부와 임파침범여부 등을 따라 병기를 1기에서 4기로
나누어서 분류를 한다.

일단 암이 발생하면 모든 환자가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병기에 따라서 전문의에게 자신의 병세에 대하여서 듣게 되고.
병기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미 암의 크기나 갯수 혹은 타장기의 전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당연히 치료법도 강력한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골수이식 등 그만큼 부담이 되는 치료법이 제시된다
.

암에 관하여서는 현대의학의 역할은 진단분야에서 자못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추적하고 미세하게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일찍 발견을 하고 조치를 취하여서 매우 안 좋은 예후에 대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넘어가는 사례도 발견된다.

또한 현대의학에서 포기한 암환자들이 여러 지면을 통하여 또는 입에서
입으로 암에 좋다는 대체의학적인 방법으로, 혹은 여러가지
심신요법으로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암의 치료에 대한 소문은 현재 고통받고 있는 암환자
들로 하여금 많은 정보를 찾게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한다.
또한 수양이나 종교적인 수행방법. 기공 등 여러가지 다양한
치료방법이 소개되기도 한다.

본인은 사상의학을 공부하고 또 사상의 치료법을 고수하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의 입장에서 역시 암환자들을 치료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위와 같은 오늘날의 실정에서, 즉 아직까지 어느 한가지
방법만으로도 충분히 암을 극복하거나 정복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의학현실 속에서 사상의학을 통하여 암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답해 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질병이 사상체질을 파악하고, 체질에 맞는 수양방법을
찾음으로써 나아지듯이 암도 역시 사상학적인 진단과 조치를 통하여 
어느 정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시중에 나가보면 정말로 많은 건강과 특히 암치료를 한다는 책을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항암이나 현대의학적인 방법을 배척하고
여러가지 자연적인 방법, 식이요법이나 관장요법 등등 또한 암에
결정적인 효험이 있다는 약물들을 소개함으로써 암을 정복한다는
책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암환자는 고통스럽고 암은 진전된다. 

본인이 볼 때 서양의학의 항암치료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매우 좋은 효과를 보는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말기암에서도 항암제를 잘 선택하여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문제는 이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지 못하고
암의 소멸보다는 일시적인 억제나 감소를 위하여
드는 비용이 너무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환자들은 초기에 서양의학적인 치료법을
선택한다.

한의원을 찾는 암환자들 중에는 서양의학에서 별다른 치료법이 없거나
이미 치료에 좋은 결과가 보이지 않고,
즉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으므로 다른 길을 모색하려고 오는
환자가 많다. 즉 먼저 한의원을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입장에서 감히 양의학을 논하기는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양약도 분명히 체질이 있다. 적용되어야 할 증상보다 앞서 적용 
되어야 할 체질이 검토되어야 한다.

말기암 환자들이 가지고 오는 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때로는 너무 
갑자기 나빠지거나,
때로는 확연히 항암제가 잘 반응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본인은 이 같은 경험을 통하여 항암제가 체질이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체질에 맞는 항암제가 선택되면, 비교적 암은 폭풍에서부터
잔잔히 가라앉듯이 서서히 진행되거나 줄어들거나 하는 것을 보는
반면에, 항암제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치료를 하든 안하든 어느 정도 괴롭고 불편하지만 증상
요법을 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환자들이 급속도로 사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암이 급속도로 퍼졌을 때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췌장암이나 담도암, 신세포암 등
여러 종양들이 고식적인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진행되어서
사망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는데, 이 경우에
항암제가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사상학적 관점에서는 항암제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서양의학의 실험체계는 생체실험 이전에 동물실험에
의거하고 있다. 그리하여 암세포를 주로 쥐나 설치류의 소형동물들에게 
이식하고 항암약물을 주입하여서 인체실험 전에 무수한 데이터를 얻는다
.
또 약물의 안전성을 위한 실험도 거듭되고 이를 반복적으로 입증을
함으로써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어느 항암제가 어떤 암에 유효하다는 것은 실험과 통계의
결과에 의존한다. 화학반응처럼 정확하게 원인과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통계적인 처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항암제의 선택을 위한 암의 분류는 조직분류를 통하여서 접근을 하였다.
암세포를 조직병리학적인 분류를 하고, 그 세포에 맞는 항암제의 발견을
위하여 엄청난 경제적이고학문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만족치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또 이 같은
서양의학에 의존치 않고도 가끔 말기환자들이 기적처럼 치유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의사들은 절대로 한약이나 홍삼, 상황버섯 등 암에관한 약물을
먹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양방의 치료에 혼선을 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는 쓸데없는데 돈만 낭비하고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린다.

현재의 의학은 과거의 의학체험의 결과이다. 새로운 약물, 새로운
처방이나 방법에 대한 시도가 없다면 결코 오늘날의 의학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병이 낫는다면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인 낫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암환자는 복잡한 생리현상과 병리현상의 결정체이다. 이미 암이 발생할
때는 나무가 썩기 시작하는 것처럼 생생한 잎이나 가지가 병이 들고
시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체의 여러 정상적인 생리현상에서
문제점을 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한가지만 가지고 암의 생리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서양 항암제는 본인이 체험한 사상학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체질을 
찾아서 적용시켜야 한다고 본다.

서양의 실험방법은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설치류에서 항암을
적용시켰다. Cell culture 를 통하여서 암세포를 성장시키고 약물을
주입시키고, 쥐에게 세포주입을 하여서
암을 성장시킨 다음에 항암제를 사용하여 통계를 낸다.

그런데 문제는 쥐라는 동물은 소음체라는 것이다.
가슴이 비좁고 엉덩이가 발달한 사람이 소음인인 것처럼
쥐도 짐승 중에서는 소음체에 속한다. 미각이 발달하고 앞니가 발달하고,
엉덩이가 발달되어 있다. 한방약물 중에 巴豆라는 독약이 있다.
이는 소음인이 아닌 사람이 먹으면 설사가 그치지 않고 독성을 발한다.
소음인들의 웬만한 변비에 극소량의 파두를 사용하면 변비가 풀리지만
나머지 체질에는 너무도 힘든 약이다.

이 같은 파두는 쥐가 먹으면 거꾸로 설사를 하지 않고 살이 찐다고
기재되어 있다. 즉 같은 약물이라도 누구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약이 될 수 있다.
또한 파두도 비록 독약으로 분류되었지만, 이미 암증의 치료에
사용된 기록이 있다. 자연 서양약물의 실험결과는 쥐에 좋은 결과이고,
소음체에 좋은 결과이다.
본인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항암제는 소음인에게 적합한 약물이다.
그러므로 소음인들이 잘 안걸리는 암종에 사용되는 약물들은
그다지 유효한 것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만약에 다른 동물들 즉 태음체나 소양체의 동물들을 사용하여 
실험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올 것이다. 즉 지금의 항암제가 거꾸로
발암제가 될 것이라 본다.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새로운 항암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희망은 대단하다. 암환자들은 죽기 전에
그래도 아무리 비용이 들고 희생이 들더라도 새로운 항암제를 한번
써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앞다투어서 항암제의 혜택을 받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새로운 항암제의 발견도 항상 부작용이 뒤따른다.
이를 해석하는 방법도 암은 치료되지만 이러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누구에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최근에  먹는 항암제들이 개발이 되어서 암환자들은
한결 수월하게 항암치료를 받기도 한다.
Xeloda라는 경구용 항암제가 개발되어서 광범위한 적응증을 가진다.
이 약물은 일부 체질에는 매우 유효하여 본인은 나름대로 환자들에게
이 약물을 권해 보기도 한다. 대장암이나 간암 등에서도 xeloda가
사상의학의 체질요법과 함께 병행되어서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또 일부 체질은 xeloda를 먹으면 손가락이 빨개지고 터지고 
손톱이 짓무르고 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미 FDA, 새로운 유방암 치료제 Xeloda 승인
[출처 : http://www.foxnews.com : 1998년 05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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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악화된
상태의 유방암에 대한 새로운 치료약품 Xeloda에 대해 승인 결정을
내렸다.  Xeloda는 Taxol과 같은 다른 치료약제에
저항성이 있는 종양을 가진 환자를 위한 구강 복용제이다. Xeloda가
입을 통해서 인체 속으로 들어가면 수년 동안 널리 사용되어온
암치료 성분, 5-fluorouracil(5FU)로 전환되어 약효를 발휘한다. FDA가
이 약의 승인을 서둘러 결정한 것은 이 약을 다른 대체 치료법이 없는
위급한 환자의 치료에 가능한 한 빨리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이 약은 또한 기존 치료법에 대해 의미 있는 치료상의 이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약품의 임상실험에서는 약을 복용한 환자의 종양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Taxol 치료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유방암 환자
4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평균 154일 동안 종양을 25% 수축시켰다.
이 실험은 16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했던 더 규모가 큰 연구의 일부였다.
전체적으로 Xeloda를 복용한 환자의 18.5%가 종양 크기가 
줄어들었다.
 Xeloda를 복용한 환자의 약 1/3은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부작용은 설사, 메스꺼움, 구토, 입 안의 염증, 손발이 붓고 심한 
발진을 수반하는 증상
 등으로 나타났다.

FDA는 약을 중단하거나 복용량을 줄이면 이러한 부작용이 대개의
경우 개선된다고 밝혔다. FDA는 Xeloda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제조업체인
Hoffman-LaRoche사가 이 약의 효능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할
것을 요구했다. – (yyj)

위의 발표에서 보듯이 xeloda 를 복용한 환자의 1/3 은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임상에서 일부 체질은 제로다를
복용하고 왔을 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손발의 말초가 붓고 짓무르고 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은 약물 복용시 붓고, 어떤 사람은 안 붓고가 아니고
이 약이 적절치 않은 체질은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는 반면에 , 
이 약이 유용한 특정 체질(사상학적인 특정체질)은 장기 복용하여도 
위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기간이나 용량의 문제가 아니고.
체질의 문제이다.

또한 부작용이 없는 그룹은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지만,
부작용이 나타나는 그룹은 결코 항암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오히려 복용을 안 했을 때보다 더욱 빨리 악화되는 경우를
임상상에서 발견한다.
위의 예문에서 18.5% 가 종양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는데,
나머지 81.5 % 는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중에는 병이 너무 말기이거나 약력이 못미쳐서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적합치 않은 체질이 복용하였으면, 더욱 악화도 
가능하였으리라고 본다.

사상의학에서는 이 같은 점을 체질판단의 정확성만 기한다면,
복용 전에 미리 예측해 줄 수가 있지만, 양의학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세포학적인 차이보다도 그 세포가 자라고 있는 숙주요인인 체질에 
대하여서 연구하는 것이 오늘날 서양의학의 반복된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 많은 항암제를 거꾸로 발암제로 
사용하게 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사상약물이 체질적용이 틀릴 때에는 용량에 따라서 독으로 
작용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한약보다 훨씬 응축되어서 약물이 강력한
양약 특히 항암제의 경우는 체질이 틀릴 때에는 이 같은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하지만 체질이 맞을 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공포스러운
항암의 과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항암제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부작용이 나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부작용이 없이 견디는데 양방에서는 이러한 부작용 즉 구토나
식욕저하, 말초의 신경학적장애의 증후군들에 대해 이를 예방하는 
약물로써 보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완책이 없이도 체질에 맞는다면 그다지 항암제가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즉 주목해 볼 것은 체질에 맞을 때는 항암이
결코 힘들지 않다는 것인데,기본적인 체질에 대한 발상이 없는
양의학에서는 이 점을 주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양의학의 커다란 오류인 것이다. 이제는 생각을 돌릴 때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날수 없다. 아무리 좋은 항암제라도 체질이 틀린 사람에게는 발암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항암제는 없다. 부작용이 없다는 것은 약물의
성질의 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극성을 가지지 못하면 치료약이 되지 못한다.
체질이 맞는 사람은 농도를 높이더라도 부작용이 거의 안 나타나는
반면에 체질이 맞지 않는 사람은 조금만 사용하여도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미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 항암제는 그 체질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
없고, 오히려 암을 더 빨리 재촉하고 자라나게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기를 “암이 너무 빨리 성장해서 또는 암이 너무
늦게 발견되어서 항암제가 듣지를 않습니다”라고 해석해준다.
또한 “암은 치료되지만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서양의학은 준비단계에서는 너무도 많은 실험과 노력을 기울이지만,
막상 임상단계에서는 너무도 소홀하다고 비판을 할 수가 있다.
암환자들은 보통의 질환을 앓는 것이 아니고, 매우 고통스러운
질환을 앓고 있다.
신체적인 고통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피폐함, 죽음에 대한 공포, 
이별에 대한 공포, 또 경제적인 부담에 대하여도 고통을 가지고 있다.
의사들이 암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받는 부담이나 고통보다 이를 체험하는 환자들이나 가족들의 부담이나
고통이 훨씬 심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암과 싸우는 의사들은 이들에 대하여서 각별한 신경과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
너무도 바쁘고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
오늘날의 의학 현실이지만,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환자들의 경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막연한 통계로써 처리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서양의학에서 내세우는 방법인
객관화와 계량화가 암환자들에게 반드시 좋은 지표일 수만은 없다.

왜 많은 암환자들이 약물에 대하여서 다른 반응을 나타내며 어떤
사람은 견디고, 어떤 사람은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하는가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체질에 근거하여서 좀 더 신중히 그 진행과 결과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항암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는 잠시 멈추고 이들에 대한
약물반응을 섬세하게 살펴서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암환자가 호전반응을 보일 때는 일반적으로 식욕의 저하가 나타나지 
않고 체중의 증가가 보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항암치료 후에 급격한 체력의 저하나 여타 증후군의 악화는
다른 결과보다 앞서서 그 환자의 체질과 약물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폐암이나 자궁암 등에 많이 사용하게 된 paclitaxel 성분
훌륭한 약이 있다. 오래 된 주목나무에서 추출함으로써 자연보호론자의
입장에서는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본인은 임상과정에서 paclitaxel이 일부 체질에 얼마나 훌륭하게 효과를
발휘하는지 누차 경험하였다.
하지만 또한 paclitaxel이 맞지 않는 체질에게 사용될 때 잘 치료되었던
암환자들이 급격히 간손상을 받으면서 사망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 같은 점이 꼭 paclitaxel의 효과인지는 더욱 연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paclitaxel 사용 이후에
급격히 악화되는 결과를 보이는 것이 일부 체질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는 어떤 약물이 어떤 병에 특효가 있다기 보다 어떤 체질의 어떤
병에는 유효하지만, 반대 체질의 경우는 전혀 다른 경우가 생긴다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체질에 대한 발상을 서양의학에서 도입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위와 같은 체질에 대한 고려가 없이 세포만을 연구하여 적용시키는 
항암제의 현실이 
항암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오며 이 같은
고통스러운 항암과정과 안 좋은 결과를 체험한 사람들은 다른 항암에
대한 길을 모색하게 되고, 양의학에서 아직 잘 인정하지 않는
대체의학이든 여타의 방법이든 증명되지 않은 채 많은 주장들이 나와서
환자들로 하여금 망설이고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 또 왜 환자들은 서양의학의 놀라운 업적을 회피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인가? 이 같은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존의학이 절대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어느 종양의사도
“당신은 이 항암제를 통하여서 암이 완치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또한 오히려 항암제의 부작용과 암에 대한 나쁜 예후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경각시킴으로써 환자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치료에 별다른 설명 없이
강제적으로 요법을 강요한다고 환자들은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암환자에게 예후에 대하여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환자들이 안심하고 믿고 치료를 받을 것인가.
양의사들 특히 oncologist들이 확실한 보장을 못하는 만큼
대체의학 쪽에서는 오히려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 이러한 치료법을 하면
낫는다 하면서 실례나 체험담 수기를 통해서 선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논리보다는 감정적이다. 이론적으로 설명받기보다는 체험을
더 듣고 싶어한다.
병원에 와서 의사 말을 듣는 것보다는 옆에 환자가 누가 무엇을 먹고
좋아졌더라는 등 그런 이야기가 더 쉽게 귀에 들려오는 것이다.

오늘날 상황버섯이 90년대 말부터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여서
지면상에 소개되고, 널리 암환자들 사이에 선전이 되며 많은
상황전업농가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목질진흙버섯으로 분류되는 Phellinus 종 중에서
Phellinus Linteus 종이 항암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실험은 주로 일본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소식이 우리나라의
버섯업계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桑黃은 이미 고대로부터 항암에 유효하게
사용된 기록들이 보인다. 그리하여 이시진의 本草綱目에서 명대 이전의 
桑黃에 대한 경험을 모두 수록하여 놓았는데 대부분이 증상으로 보아서
癌腫을 치료한 경험이 확실하다.
이러한 桑黃에 대하여 최근에 환자들이 말하기를 모 대학병원에서
암환자들에 대하여 상황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유는
상황이 출혈소인이 있고, 혈액응고를 억제한다고 이야기한다.

참으로 가당한 이야기이다. 본인이 임상과정에서도 상황의 놀라운
항응고 효과를 경험하였다. 오래도록 잘 알던 노인이 있었는데 이 분은
중풍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손으로 다리를
끌어당기고 하였다. 하루는 상황을 달여서 먹더니 나한테
“한 선생 이리 와봐 이것 좀 보라고” 하였다.
그 전날까지 다리를 혼자서 못 끌던 분이 그날 아침에는 다리를 스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는 본인이 실로 눈으로 본 바인데, 당시 생각으로는
상황이 필히 혈액응고를 억제하고 막힌 것을 뚫는 효과가 뛰어난
破血之劑 라고 생각이 되었다.

많은 암환자들이 혈액의 점도가 높아지고 혈액이 탁해지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리는 산소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체내에 부족한 산소의 공급을 위하여 혈액은 Hb 을 높이고
이러한 Hb의 증량이 또한 혈액의 순환에 문제를 일으킨다.

이 점에서 桑黃의 효과는 혈액의 점성을 없애고 산소공급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양약 중에 TPA라는 약물이 있다. tissue plasminogen activator 로서
혈액에서의 응고기전과 이에 반한 용해기전 중에 용해 쪽에 작용을 한다.
그리하여 양의학에서는 중증 환자 중에 TPA 를 사용하여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이 같은 약물이 안 받는 체질에게는
그 사용량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심하게 전신에 출혈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TPA 는 사상학적 견해에서 
일부 체질에게는 매우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만 기타의
체질에게는 사용되지 말아야 할 약물로 생각된다
.
본인도 상황 역시 이 같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일부 체질에는 혈액의 응고를 억제하고 피를 묽게 하고
고지혈증을 없애게 할 수가 있고, 또한 좋은 항암제로서의 유효성도
인정이 되지만, 받지 않는 체질에게는 상황이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사상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식이요법이나 대체요법, 
항암제이건 모두 체질에 맞는 방법으로 선택될 때만이 올바른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고
, 앞으로 암을 연구하는 분들이나 암으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은 이 같은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